[사설]칡뿌리 같은 중복규제에 발목 잡힌 신산업 혁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9일 00시 00분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가 선정한 9대 선도(先導)산업 가운데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 핀테크, 드론 등 4개 산업, 19개 분야를 대상으로 ‘규제 트리(Tree)’를 만들어 어제 공개했다. 어떤 분야가 어떤 규제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규제 상황도다.

상의는 신산업 혁신을 원천봉쇄하는 규제의 뿌리, 즉 ‘대못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현행 ‘데이터 3법’을 꼽았다. 디지털 산업의 원유(原油)라 할 만한 빅데이터의 활용이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에 걸려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데이터 3법은 국회에서 개정안 절차작업을 밟고 있다. 하지만 설령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또 다른 관련 규제가 이중삼중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경제인들의 우려다. 예를 들어 원격진료가 가능하려면 개인정보보호법만 고쳐서는 안 되고 의료법, 약사법 등을 함께 손을 봐야 하는데 앞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상의는 또 법령이 애매한 채 남아 있어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소극 규제’라고 규정했다. ‘타다’가 렌터카로 공유차량 서비스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명확한 규정과 해석 때문에 엎어지기 일보 직전에 와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에 없던 사업을 하려는 벤처 사업가들로서는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인사들은 규제 철폐를 수도 없이 강조해왔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뭐가 달라졌는지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성과는 거의 없고 일부에서는 규제 역주행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말 규제혁신의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먼저 이런 규제 트리를 만들어 어떤 규제가 어떻게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막고 있는지 살펴보고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정상이다. 한국이 기술은 앞서 있는데 낡은 규제 때문에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도산업#규제 트리#데이터3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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