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바꾸자[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9일 03시 00분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성공이란 무엇인가?’

카이로나 런던의 박물관에 가 보면 누워 있는 고대 이집트 미라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주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옛날 미라의 가족들은 주인이 다시 환생할 줄로 믿었다. 이를 위해 미라를 그토록 정성껏 만들어 보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허황된 믿음이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주인은 오질 않고, 매번 가 봐도 바싹 마른 미라만 청승맞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죽으면 환생하거나 혹은 어디론가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21세기인 현재도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데로 가기는 한다. 지구상의 동식물들은 서로 잡아먹고 먹히며 사는데, 잡아먹힌 동물은 다른 동물의 일부가 되며 그 동물이 죽으면 또 다른 곳으로 간다. 화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질소, 수소, 탄소 등으로 만들어진 유기체인데 생명이 분해되면 복잡하게 순환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모습 그대로 다시 태어나거나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소풍을 온 듯 아름답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후손들을 위해 개선해야 할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하다. 당장 해결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에 우리가 죽은 후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렇다고 거창하게 행동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기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조금만 더 노력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미라#환생#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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