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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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까지도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소수의 여성 지휘자들은 편견과 성차별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여성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자세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첼로 파트에 상당 기간 남성만 고집하던 시절이다. 1967년 뉴욕타임스(NYT) 음악 평론가인 헤럴드 숀버그는 “여성 지휘자의 음악은 언제 시작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속치마가 보일 때”라고 비꼬았는데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생전에 “지휘란 음표 뒤에 숨은 우주를 찾는 여정”이라고 했다. 예컨대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에서 말하고 싶어 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의 음표, 악상 기호, 빠르기, 박자 등 수많은 도구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휘자는 악보는 물론 작곡가의 전기, 편지, 일기와 당시 시대 상황까지 끊임없이 공부한다.

▷지휘자는 프로야구 감독, 해군 제독과 함께 미국 남성들이 선망하는 3대 직업이라고 한다. 손짓 하나로 좌우하는 절대 권한도 매력적이지만, 각 분야 최고라고 자부하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 목표를 이뤄내는 성취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바도는 연습 중 “들으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는데, 연주자들이 다른 파트 소리를 들으면서 지휘자가 만들려는 소리의 모양과 의미를 알기를 바랐다고 한다.

▷여성 지휘자 김은선(39)이 96년 역사의 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첫 여성 음악감독이 됐다. SFO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다음으로 큰 세계적인 오페라단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36세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이 됐으니 그에 버금가는 셈이다. 세상이 바뀌고 성시연 장한나 여자경 등 뛰어난 여성 지휘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인 지휘 분야에서 흔치 않은 성과다. NYT는 “그녀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성에게만 붙이던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란 호칭이 여성 지휘자에게 붙기까지는 수많은 여성 지휘자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다. 여성 밑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가수의 항의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에게 지휘를 맡긴 게 불과 14년 전인 2005년 11월 빈 무지크페라인잘 연주회에서다. 여성 지휘자는 합창단, 교향악단, 오페라 순으로 적다. 그나마 객원지휘는 많지만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는 소수다. 김은선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었을지 짐작이 간다. 브라바(brava)!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지휘자#성차별#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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