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과 공직자선거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상정을 앞두고 여야의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에 심재철 의원이 선출됐다. 신임 정책위의장에는 김재원 의원이 선출됐다. 어제 의원 106명이 참여한 결선 투표에서 심재철-김재원 조는 52표를 받아 각각 27표를 얻은 강석호-이장우 조, 김선동-김종석 조를 크게 앞섰다.
심 의원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바 있다. 한국당 주류와는 결을 달리하는 심 의원이 예상 밖의 당선을 한 배경에는 대여 협상을 의식한 표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비공개 청와대 업무추진비 명세 폭로 등 강력한 대여 투쟁에 앞장서 왔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그는 이른바 황심(黃心)과도 거리가 있다. 한국당이 여당의 입법 강행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의외의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심 원내대표 선출 직후 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회동을 갖고 10일 본회의를 열어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민식이법’ 등 비쟁점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상정을 보류하고, 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철회한 것이다.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지만 워낙 여야 이견이 큰 데다 벌써 당내 반발이 나오고 있어 언제 극한 충돌로 치달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심 원내대표 앞에는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을 풀어가는 한편 당을 혁신해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쌓여 있는 셈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일방통행에는 자기희생과 반성 없이 기득권을 수호하고 정교한 전략 없이 거친 투쟁만 고수하는 무능한 야당이 일조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런 ‘웰빙’ 야당을 혁신해 여당을 견제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었다. 5선의 심 원내대표와 친박(親朴)계인 3선의 김 정책위의장 당선이 세대교체에 역행하는 것이고, 쇄신 의지가 희석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심 원내대표는 건전한 보수 가치를 담아낼 자기혁신과 실력을 보여줘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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