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후보자가 총선 전 인사 없다고 선언해
문재인 정부의 ‘검사 인사 규정’ 원칙 지켜야
“검찰 개혁의 제일이 인사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공무원 조직이 인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인사를 개혁하면 행동 패턴이 바뀐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인 박상기 전 장관이 지난해 11월 사석에서 검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얘기다. 얼마 뒤 ‘검사 인사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격상돼 제정되더니 국무회의까지 통과해 같은 해 12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박 전 장관은 “검사 인사를 먼저 하고 원칙을 나중에 세우는 이전 정부의 ‘선(先)인사 후(後)원칙’의 시대를 벗어난 것”이라며 의미 부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총 21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규정의 제1조는 ‘검사 인사의 기본 원칙과 절차를 정함으로써 인사 관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인사의 대원칙을 처음 세운 것이다. 검사들도 인사의 예측 가능성이 생겼다며 환영했다. 특히 제12조의 필수보직기간을 반겼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필수보직기간은 공무원이 다른 직위로 전보되기 전까지 현 직위에서 근무해야 하는 최소 기간이다. 지방검찰청의 차장, 부장검사의 필수보직기간은 1년, 평검사는 2년이다.
요즘 검사들에게 이 규정이 다시 회자된다고 한다. 규정대로라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지휘 중인 3차장과 반부패수사2부장은 내년 8월까지 근무 기간이 보장되어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의혹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의 2차장과 공공수사2부장,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의 형사6부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직제 개편을 하면 예외적으로 필수보직기간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 검찰에서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알리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41개 직접 수사 부서의 폐지를 건의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 민감한 수사를 담당하는 차장과 부장, 평검사 인사를 앞당기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것. 김 차관은 “누가 그런 가짜뉴스를 퍼뜨리냐”면서 황당해했지만 검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 간부다. 현 정권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대검찰청의 수사지휘 라인 참모, 서울중앙지검장 등은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언제든 인사할 수 있다.
법무부에서 검사 인사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전직 검사장은 “인사 요인이 전혀 없다. 만약 내년 1월에 인사를 한다면 그건 정치적 이유”라고 했다. 6개월 전에 이미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염두에 두고 60여 명의 고위 간부를 용퇴시키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기습적인 인사는 임기 2년이 보장된 윤 총장을 강제 퇴진시키기 어렵게 되자 그에게 불신임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의도라면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인사라는 측면에서 위법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추미애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첫 출근길에서 윤 총장을 향해 “헌법과 법률에 위임받은 권한을 상호 간에 존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추 후보자는 내년 총선 전까지 인사가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 이 정부의 검찰 인사 대원칙을 지키는 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