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가 화성 8차 사건을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자백해 이미 이 사건의 범인으로 20년을 복역한 윤모 씨가 재심을 청구했다. 결과가 뒤집혀 억울한 옥살이의 한이 풀릴까. 민주화운동이나 시국 사건 관련자가 시대가 바뀌어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 형사 사건에서는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써도 형이 확정된 뒤 뒤집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기도 어렵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 진범이 자백해도 안 된다고?
2000년 8월 10일 새벽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에서 최모 군(당시 15세)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택시기사가 승객에게 피살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은 엉뚱하게 최 군을 범인으로 몰아 구타와 고문 끝에 자백을 받아내 15년 형을 살게 했다. 감형을 받기 위해 거짓 반성문을 쓰고 10년 수감됐다 나온 최 군은 2016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쓴 지 16년 만이었다.
“20년 전이라면 윤 씨 사건이 재심 신청까지 갈 수나 있었을까요? 기적입니다.”
영화 ‘재심’의 소재였던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내 ‘재심 전문’ 변호사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화성 8차 사건의 윤 씨 재심을 맡아 주목받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45). 그는 지난달 13일 윤 씨 재심을 신청한 며칠 후 서울 서초동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이춘재의 자백이 있었고 경찰이 유전자(DNA) 검사 등으로 이춘재를 진범이라고 잠정 결론 냈는데도 재심 신청을 ‘기적’이라고까지 해야 하나.
“약촌오거리 사건은 발생한 지 3년가량 지난 뒤 진범이 경찰에 체포됐고 자백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검찰에서 ‘무혐의’로 영장이 기각됐어요. 최 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에야 진범이 뒤늦게 구속 기소돼 복역 중입니다.”
윤 씨 사건 역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화성 연쇄살인범의 자백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진범이 자백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다시 묻힐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윤 씨 스스로 재심을 진행할 형편도 아니었다.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10대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전주지검은 죄를 자백 받은 3명을 기소했고 3∼6년 형이 최종 선고됐다. 그런데 부산지검이 진범 3명을 붙잡아 전주지검에 넘겼다. 하지만 이미 다른 ‘범인’을 기소한 전주지검은 ‘무혐의’로 묵살했다. 사건 발생 17년 만에 처음 기소한 3명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진범’들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진범 3명 중 한 명이 자백했으나 한 명은 자살했고, 한 명은 은둔 도피 중이다.
진범이 자수하거나 자백을 해도 왜 사건이 뒤집히지 않는 것일까. 무고한 범인의 수사, 기소에 참여한 누군가는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인권의 보루가 오히려 침해의 주체가 되는 기막힌 현실을 보여준다. 화성 8차 사건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는데 이춘재에게서 “집에 들어가서 범행했다”는 진술이 나왔을 때 윤 씨를 범인으로 몰았던 경찰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박 변호사는 말했다.
○ 명백한 물증도 때로는 무력
“소아마비 장애로 한쪽 다리를 저는 윤 씨가 키보다 높은 담장을 넘어갔다면 손과 발을 다 써야 합니다. 그런데 담장에 손발을 쓴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더욱이 그날 피해자 집 대문은 열려 있었는데 다리도 불편한 윤 씨가 담장을 넘었다는 겁니다. 불러준 대로 썼다고 윤 씨가 말하는 자술서에는 장갑 얘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목의 상처는 맨손으로는 내기 어렵습니다.”
박 변호사는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법원의 재판, 변호인의 조력, 그리고 언론의 합리적 의심,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작동됐더라면 윤 씨의 억울한 옥살이에 제동이 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재심 사건 중에는 수사기관에 의한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은 것이 드러나도 쉽게 뒤집히지 않고 있는 것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2인조 살인 사건’이다.
1990년 1월 30대 여성 살인 사건의 ‘범인’인 장모 씨와 친구 최모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뒤 모범수로 감형돼 21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두 사람은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4월 법무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는 수사 과정에 인권 침해와 고문 등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빠르면 올해 중 법원에서 재심 여부가 결정된다.
○ 허위 자백 ‘범인’에 가출 청소년, 장애인 많은 이유
가혹행위 끝에 허위 자백을 하는 등 ‘사법적 피해’를 당하는 사람 중에는 빈곤층, 가출 청소년, 장애인 등 이른바 ‘사법적 약자’가 많다. 화성 8차 사건의 윤 씨도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은 지체장애인이었다. 나라슈퍼 사건의 ‘범인’ 3명은 모두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었고 2명은 10대 청소년이었다. 박 변호사가 국선 변호인으로 처음 재심 사건을 맡았던 ‘수원 노숙소녀 살인 사건’에서 경찰의 가혹행위로 범행을 자백했다가 후에 무죄로 풀려난 2명은 노숙자 장애인이었다. 이 사건에서는 검찰도 5명의 가출 청소년을 강압적 수사로 범인으로 몰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엄궁동 살인사건의 장 씨도 1급 시각장애인이었다.
박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일부 증거나 증언을 토대로 범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충분히 방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특징을 반영하고 배려하는 조사가 이뤄지기보다 오히려 약점으로 삼아 범인 검거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동국대 겸임교수도 신동아 12월호 인터뷰에서 “윤 씨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확실해질 경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밝히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 수임 안돼 국선 변호인하다 재심 변호사 길로
박 변호사의 사무실은 8m² 남짓한 월 임차료 70만 원의 ‘단칸방 사무실’이었다. 사무장이나 비서도 없다. 5층 한 층의 각자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변호사 10여 명을 도와주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한 명이 전부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공익활동을 한다며 3년째 무료 제공해주고 있는 사무실이다.
그는 수임료를 받는 사건은 일절 수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심이 필요하거나 억울한 사건의 무료 변론만 한다고 했다. ‘영업’이 필요 없으니 명함도 없다. 그는 “무료 변론을 하다 2016년 ‘나는 망한 변호사다’라고 공개 파산을 선언했는데 시민 1만8000여 명이 후원금을 보내주어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주로 강연으로 활동비를 마련하는데 각급 학교, 관공서 기업 단체 특히 검찰과 법원에서도 강연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그가 ‘무료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된 것은 ‘거룩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절박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전남 완도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목포대를 중퇴한 뒤 고졸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지연 학연 무슨 연(緣)도 부족해 도무지 수임이 안 됐다. 궁여지책으로 건당 20만∼30만 원 받는 국선 변호에 매달리다 보니 역시 돈이 없어 제대로 변호사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법 약자’들을 만나게 됐다. 그러던 중 재심으로라도 억울한 사정을 풀어야 할 사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 변호사가 요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형수 오휘웅 사건’이다. 1974년 내연녀와 함께 내연녀의 남편과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오 씨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1979년 9월 사형이 집행됐다. 언론인 조갑제 씨는 당시 수사 및 재판 과정의 기록,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오 씨가 진범인지 의혹을 제기하는 책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1986년)를 썼다. 박 변호사는 “책에 소개된 조서 등 공식 기록만으로도 재심에서 무죄가 충분하다”며 오 씨 유족이나 친지 등 관련자를 찾고 있다. 사형이 집행된 사건에 대한 재심은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사법 개혁이 화두인데 무고한 사법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던진 그의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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