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체육회장이 지방자치단체장에서 민간인으로 바뀐다. 17개 광역 지자체와 228개 기초 지자체 등 총 245개 지방체육회는 2020년 1월 15일까지 민선 회장을 뽑아야 한다. ‘지자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가 핵심인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법률이 내년 1월 16일 시행됨에 따라 전국 시도체육회와 시군구체육회는 체육회장 선거 체제에 돌입했다. 15일 전남도체육회가 광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선거를 치르고 서울시체육회는 데드라인인 내년 1월 15일 새 회장을 선출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지자체장은 지방체육회장을 당연직으로 겸직해 왔다. 현재 17개 시도체육회는 모두 지자체장이 회장을 맡고 있다. 228개 시군구체육회장의 93%(212명)가 지자체장이다. 그렇다 보니 지자체장이 체육단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방체육회는 종목별 동호회가 회원인 수십 개의 종목단체와 읍면동체육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역 주민이 기반인지라 각종 선거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 실제로 지방체육회장을 겸임한 역대 지자체장들이 선거운동에 지방체육회 조직을 동원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정치와 체육을 분리하자는 게 법 개정의 취지다. 국회법은 이미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하고 있다.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첫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올 초 지방체육회 선거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지역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설명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지방체육회 회장선거관리 표준 규정을 제정했고 Q&A 자료집도 배포했다. 이기흥 회장은 “스포츠 분야 선거답게 서로 존중하는 공정한 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다른 선거에 모범이 되고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선거 관리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기본 방침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민선 지방체육회장 시대의 가장 큰 걱정은 예산 확보다. 민선 체육회장과 예산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장의 코드가 맞지 않으면 난항이 예상된다. 지방체육회 예산은 지방비에 95% 이상을 의존하는 데다 공공 체육시설 대부분은 지자체 관할이기에 그렇다.
“지자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를 통해 지방체육의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다. 지자체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자율적인 의사 결정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한 시도체육회 사무처장이 내뱉은 푸념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체육예산을 줄일 게 뻔하기에 지자체가 육성하고 있는 실업팀 해체가 우려된다. 시장배, 도지사배 같은 대회는 슬그머니 사라질 수도 있다. 지방체육회 직원들의 고용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안을 심사 중이거나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그중에서 지방체육회에 대한 재정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임의단체인 지방체육회를 대한체육회처럼 법정법인화해야 예산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래야 자율적으로 지역체육 특성화와 생활체육 활성화 등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방체육회의 법정법인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대의원 확대기구 투표(인구비례 선거인 50∼500명)로 실시되는 첫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는 공정성 시비 등 잡음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 후폭풍이 거세진다면 대한민국 체육계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법적으로 예산을 보장받는 게 민선 지방체육회장제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지방체육회 스스로의 환골탈태는 필수다. 회원단체의 회비 납부 의무화, 임원 출연(出捐), 민간 후원금 제도 운영 등 자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지방체육회장직을 정계 입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인사들에 대한 체육인들의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 정치와 체육을 분리하고자 마련된 민선 체제가 오히려 ‘정치인 등용문’이 되는 우(愚)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계는 탈정치화와 홀로서기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기대 반 우려 반이 희망으로 바뀌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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