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뚫은 성모[이은화의 미술시간]〈90〉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라파엘로 ‘핑크 마돈나’, 1506∼1507년.
라파엘로 ‘핑크 마돈나’, 1506∼1507년.
르네상스 3대 미술 거장에 속하는 라파엘로는 성모를 그리는 데 탁월했다. 그의 그림 속 성모는 우아하면서도 인간적인 어머니의 모습이라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핑크 마돈나’ 역시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혀 놓고 놀아주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성모의 귀를 자세히 보면 귀 뚫은 자국이 선명하다. 성모도 귀걸이를 했던 걸까?

라파엘로가 23세 때 그린 이 그림은 많은 상징과 암시를 갖고 있다. 우선 그림 속 성모가 아기 예수에게 건넨 핑크색 카네이션은 아들에게 닥칠 고난에 대한 암시다. 이 꽃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성모가 눈물을 흘렸던 자리에서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또 카네이션은 헌신, 영원한 사랑, 결혼 등을 상징하는데 이는 그림의 주문자와 관련이 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페루자의 귀족 여성 막달레나 델기 오디가 남편과 사별 후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 주문한 것이다. 휴대용으로 그려져서 크기도 A4 용지보다 작다. 당시 귀족 출신 여성이 수녀원에 들어갈 때는 많은 지참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그는 지참금과 함께 이 그림을 가지고 갔다. 성모의 옷과 침대 커튼의 녹색은 르네상스 시대 웨딩드레스의 색이고, 무릎을 덮은 푸른색은 고귀한 색으로 신성(神性)을 의미한다. 속세의 삶을 뒤로하고 예수를 영적 배우자로서 평생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막달레나의 결심을 화가가 대신 표현한 것이다. 창문 밖 폐허가 된 풍경은 예수의 탄생으로 이교도 세계가 멸망했음을 암시한다.

성모의 귀 뚫은 자국은 그림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지만 제일 큰 상징이다.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여성의 귀걸이는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허영심의 상징으로 간주됐다. 특히 페루자에서는 유대인 여성들만이 귀걸이를 착용했다. 화가는 귀걸이를 뺌으로써 유대인이었던 마리아가 기독교로 개종했음을 밝히고 있다. 성모 귀에 난 구멍은 귀걸이를 했던 속세의 여성에서 구세주의 어머니로 공경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시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라파엘로#핑크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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