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자국 우선주의와 북핵 위협으로
국가의 생존 걸린 외교, 안보 싸움 계속
북중러는 3국 공조로 한미일에 대립각
세계 인구 5분의 1, GDP 25%인 한중일
3국은 공동이익 위해 힘과 지혜 모아야
23, 24일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리는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는 최근 북-미 관계에 긴장이 다시 높아진 가운데 3국 정상들이 동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떤 메시지로 공동보조를 재확인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3국 서밋을 계기로 예정된 한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2국 간 현안 해결을 위한 대화의 진전이 있게 될지도 궁금하다. 이번 회의는 의제의 사전 조율 등 준비과정이 불투명한 ‘깜깜이 서밋’이 되고 있는 데다 동아시아 정세가 1년 반 전의 제7차 정상회의 이후 급격히 달라진 가운데 열리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 도발에 미국은 ‘대화의 파국’을 경고하고 있다. 또 북의 일방적인 연말시한 설정에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비핵화 협상의 데드라인은 없다”고 일축하는 등 북-미는 상호 압박을 거듭하고 있다.
한중일은 2018년 5월 도쿄의 제7차 정상회의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추진을 목표로 하는 판문점선언의 환영 등을 내용으로 한 특별성명과 공동선언문을 채택해 3국 공조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선언 이후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세에 적지 않은 변화가 계속됐다.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북한을 감싸는 북-중-러 3국 공조로 은근히 한미일 협력체제에 대립각을 세우는 ‘신냉전구조’가 형성되려 하고 있다. 북-미 간 대화는 두 차례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완전 비핵화라는 세계적 기대에 못 미치며 머뭇거리고 있다. 일본은 북한 핵 위협이 안보의 ‘최대 위협’이라고 강조해 오던 강경 자세에서 일변해 아베 신조 총리가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3국 정상회의는 발족에서부터 그간의 진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이니셔티브가 강하게 작용해 왔다. 1999년 제1회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그룹 제시로 동아시아 지역 간 협력체 구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세 차례의 아세안+3 회의 때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제도화와 필요성을 제안한 것이 실현돼 2008년 후쿠오카에서 첫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렸다. 당시 중일 관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중국이 한국의 중재를 받아들임으로써 발족을 보게 되었다. 출범은 하였으나 2015년에는 3년 반 만에 재개되었고 2018년에도 2년 반 만에 열리는 등 굴곡과 공백이 많았음은 그만큼 2국 간 관계의 갈등과 마찰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번 청두의 3국 서밋은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먼저 발표해 한일 정상 대화의 복원에 의욕을 보인 데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내년 상반기 한국, 일본 방문의 외교 일정을 추진하고 있어 2국 간 대화와 동아시아 지역질서 안정화의 네트워크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일, 한중의 2국 간 관계 개선 역시 시급한 과제다. 한일 간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과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대응 등 역사 문제가 경제, 안보에까지 확산되는 갈등으로 양국 국민 간 상호 신뢰도는 전에 없이 얼어붙어 있다. 일본 언론NPO가 6월 발표한 한일 국민 상호인식 조사에서 상대국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응답이 한일 양국이 똑같은 49.9%였다. 같은 곳의 10월 조사에서 일본인의 중국에 대한 인상은 8할이 ‘나쁘다’라고 나왔다. 한일, 중일 간에 관계 개선의 과제가 많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중일의 동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5분의 1,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 무역에서도 20% 가까운 비중을 갖고 있는 성장동력이요, 미래 존(zone)이다. 3국은 정상회의 이외에도 외교 경제 문화 농업 등 21개 장관급 회의를 포함해 70개 이상의 정부 간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100개 이상의 협력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지금 세계는 미국 영국 등 강대국의 자국 우선적인 고립주의와 북한 핵 위협으로 결코 평온하지 않은 21세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눈과 귀가 국내 정치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밖에서는 국가와 민족의 생존이 걸린 안보, 외교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험난한 상황에 한중일 정상회의는 3국의 공동 이익을 찾아 동아시아의 생존에 힘을 모아야 하며 한국은 한중일 서밋의 이니셔티브를 다시 한번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의는 문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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