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한 해를 돌아보면서 뭘 잘했고 뭐가 부족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맘때 다이어리를 사거나 내년 영어 성적 올리기, 다이어트 계획 짜기 등 여러 계획을 세우기 바빴다. 그러나 올해는 내년보다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서 내년에는 조금 더 의미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외국인은 한국 사회가 바쁘게 돌아간다고 한다. 내 마음이 바쁘지 않더라도 주변이 바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분위기를 타기도 한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계단 올라갈 때, 버스 탈 때, 안 바쁜데도 불구하고 다리가 빨리 움직인다. 필자는 최근 바쁜 순간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는 대부분 살기 위해 바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근본적으로 ‘남을 위해’ 바쁜 때가 더 많다. 물론 그것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진정한 의미는 놓칠 수도 있다. 사회생활, 결혼생활을 한국 사람들의 평균 수준보다 조금 더 빨리 시작하면서 어릴 때부터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기에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나이보다 늙어 보이나’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도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이유는 남들이 잘 안 하는 일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돈을 벌어 저축하는 행복보다, 남을 돕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주변이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생각을 갖게 돼 주한 외국인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 처음에는 주한 몽골인을 대상으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다국적으로 활동해 현재는 국제문화협회를 운영한다.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주민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됐고, 옛날보다는 이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옛날에는 TV에 나오는 연예인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면 이제는 외국인 방송인과 연예인도 제법 나온다. 외국인에 대한 적대심이나 차별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TV에서만 외국인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외국인들의 활동은 훨씬 많다. 한국 정부도 외국인 관련 법안을 많이 만들고 있으며 국내 거주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생활한 10년 동안 수많은 현상을 보며 바쁜 일상에 적응했다. 바쁜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의미 있는 바쁜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국민을 위한 활동을 많이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주민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주다가 이제는 하루에 20∼30분 시간을 내 살면서 필요한 여러 생활정보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이주여성으로서의 삶을 막 시작했을 때는 ‘한국에 괜히 남았다’ ‘국제결혼이 이렇게 어려운가’ 등의 생각을 늘 했다. 문화, 사회적 갈등, 내부의 갈등 등 여러 이유로 한국생활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젠 후회하지 않게 됐고, 그 시작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소연할 때가 많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먼저 이해하면, 내 입장을 남에게 이해시키기도 쉽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삶의 의미는 내가 만들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
요즘 전화 받는 일이 즐거워졌다. 한 이주민 언니의 연락 때문이다. 그 내용은 “고맙다. 동생이 알려준 대로 남편, 시댁하고 대화를 하니 관계 개선에 도움이 많이 됐다”는 것이었다. 친한 언니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또 친구들의 새로 태어난 아이 두 명에게 이름도 지어줬다. 나는 아직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이런 부탁을 나에게 하는 것 자체가 고맙다. 그동안 의미 있게 삶을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삶의 의미와 지혜를 한국에서 얻었다. 독자 여러분도 올 한 해를 행복하게 잘 마무리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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