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복 시인의 작품 중에서 세 개를 꼽으라면 그 유명한 ‘봄비’, 등단작이었던 ‘동백꽃’, 그리고 ‘꽃씨’를 들겠다. 단 세 작품만 읽어봐도 시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담백하고 깨끗한 것이야말로 시인의 스타일이다. 시인을 천거했던 이도 “요새 일로서는 귀한 작품이다” 했다. 진실로 청아하기란 쉽지 않다. 1954년 추천 당시 이미 귀한 작품이었으니 오늘날에는 그 귀함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고아하고 품위 있는 말씨와 사상을 사랑한다.
한겨울에 무슨 꽃씨 타령이냐며 읽는 이께서 타박할지 몰라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첫 연, 첫 구절에 12월의 마음이 오래 머물러 버렸다. ‘가장 귀한 거 하나만 간직하고 나머지는 다 잊겠다.’ 이 말은 시인이 꽃씨를 보며 한 말이다. 결코 우리의 지난 1년이라든가, 세월이라든가, 기쁘고 슬펐던 기억들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는 저 꽃씨가 세월이나 기억, 혹은 감정들로 보인다. 첫 연을 읽다 보면 작은 씨들이 마음에 콕콕 박혀 아팠던 지난날들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는 더더욱 12월의 시가 된다. 이제 딱 하나만 남기고 다 잊을 때가 됐다. 기쁨도 슬픔도 지나갔다. 어떤 의미로는 고마웠고 감사했다. 그러니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딱 하나 남길 그 씨앗을 고르기로 하자. 씨앗이라도 품어야 긴 겨울을 지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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