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 경제의 불안과 불확실성, 어떻게 극복하나[동아 시론/정갑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1일 03시 00분


경제 회복의 실마리 찾기 위해서는 정책결정 패러다임 반드시 개혁해야
‘어명’처럼 집행돼 부작용 낳은 만큼 개방 토론과 과학 분석 통해 이뤄져야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총장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총장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2020년에도 세계 경제는 불확실한 침체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1단계 합의에 이르렀지만, 지식재산권과 정보기술(IT), 금융 등 핵심이 빠져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가 ‘미국 우선’ 정책을 쉽게 양보할 리 없고 시진핑도 만만하게 굴복할 리 없으니 새해에도 양국관계는 몇 차례 고비를 맞게 될 것 같다. 게다가 영국은 보수당의 압승으로 새해 벽두부터 브렉시트를 강행할 태세라서 유럽연합(EU)의 파열음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근 국제 정세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자간 자유무역 질서의 퇴조다. 자국의 이익보다 세계 공영(共榮)을 외치는 경제대국은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항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거부하고 있어, 이제 무역 분쟁의 조정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 같다. 경제 회복이 늦어질수록 강대국의 보호무역은 더 확산되고, 이것이 다시 침체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보호무역은 1930년대 초 세계 대공황을 불러온 주범의 하나였다.

이 와중에 한국은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과거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기적적인 수출 주도 성장을 이룩했지만, 사드 배치와 지소미아 등 현안으로 역내 최대 무역국인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은 부진하다. 국내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고임금, 노동시장의 경직 등으로 외국인 투자가 나날이 줄고, 오히려 해외로의 자본 탈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 원재료에서 부품과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글로벌 공급체인망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미중 갈등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심지어 미국으로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의 본국 회귀)하는 글로벌 공급체인의 재편 과정에서도 한국을 찾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새해 불확실한 통상 여건과 글로벌 경제의 불안을 극복하고 경기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하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인 사람 중심의 공정한 분배와 혁신성장도 달성해야 한다. 고용 창출과 집값 안정 등 당장의 현안도 많다. 그러나 혁신성장은 고사하고 날로 심화되는 경기침체와 고용 부진은 물론이고 분배 개선도 요원한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의 출구를 찾는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반드시 개혁해야 할 절실한 현안이 있다. 바로 정책 결정의 기본적인 과정을 정립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은 그동안 국정철학과는 달리 사람 중심의 민주성이나 개방적 토론과 학문적 전문성이 배제된 채 대부분 권위주의적으로 결정됐다. 탈(脫)원전에서부터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비정규직 철폐, 분양가 상한제, 입시 제도의 급조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전문가 집단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 갑자기 어명(御命)처럼 발표된 정책을 권위적으로 집행하니, 결국 전문가의 예견처럼 정책 목표와는 상반된 부작용을 불러왔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와 실증적 자료로 검증된 학문적 결과가 21세기 한국에서만 빗나갈 리는 없지 않은가.

정부의 이전소득으로 겨우 2%에 턱걸이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혁신을 진작시킬 제도 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재정 지출은 시혜적인 분배보다 생산 기반의 확충에 집중해야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된다. 민간부문 대신 정부가 주도해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한 나라는 역사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민간부문을 도외시하는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의 실험은 오래전 역사에서 막을 내렸다. 분배와 형평의 가치는 소중하지만, 섣부른 이념에 심취되어 실패가 자명한 정책을 더 이상 무모하게 실험해서는 안 된다. 경제는 자유로운 시장과 민간의 경쟁이 활성화되어야만, 성장과 분배는 물론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이 길러진다.

경제정책은 정부가 집행하지만 그 결과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학은 사람들의 합리적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교과서와 상반된 경제정책은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불러온다. 획일적인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취약계층의 대량 실업을 유발하고, 분양가 상한제는 공급 부족을 불러 집값을 폭등시킨다는 경제논리가 그대로 현실에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모든 정책이 개방적인 토론과 과학적인 분석을 거쳐 정제될 수 있도록 정책 결정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총장
#세계 경제#경제 침체#미중 무역 분쟁#소득주도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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