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nvestor-State Dispute·ISD)에서 처음 패소했다. 이란 다야니 가문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 합병하려던 과정에 한국 채권단의 잘못이 있었다며 보증금과 이자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한국 정부에 냈다. 지난해 6월 유엔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는 다야니 측 손을 들어줬는데 한국 정부가 영국 고등법원에 취소를 청구했으나 이번에 기각됐다. 한국 정부는 다야니 측에 730억 원을 물어줘야 한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을 때 국제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문제는 이번보다 훨씬 큰 규모의 ISD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고의로 승인을 지연하고 부당하게 과세해 손해를 봤다며 5조3000억 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론스타는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 외환은행을 사서 9년 만에 5조 원 가까운 차익을 남겨 ‘먹튀’ 논란이 빚어졌음에도 엄청난 액수의 소송까지 제기한 것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약 1조 원 규모를 물어달라고 제소하는 등 여러 건이 진행 중이다.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의 올해 세계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세계에서 3번째로 ISD 분쟁을 많이 유발한 조약이다. 미국인이 한국의 주택 재개발 과정에서 자신이 투자한 토지의 수용·보상 과정이 한미 FTA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는 지난해 9월 한국 정부가 처음 승소했다. 최근엔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도 크게 늘어나 ISD는 양날의 칼이다.
앞으로 이어질 ISD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한다면 막대한 금액을 세금으로 물어줄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들이 긴밀히 협조해 철저한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 외국과의 투자협정에서 한국 정부에 불리한 독소조항은 없는지 잘 살펴 조정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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