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정치[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03시 00분


‘4+1’ 협의체는 옛 ‘야권연대’ 프레임… 선거법-공수처법 ‘빅딜’의 위장개혁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2012년 1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가 선출됐다. 이틀 뒤 정의당 전신인 통합진보당에서 긴급 제안이 도착했다.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수를 배분하자’는 내용이었다. 3개월 뒤 19대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청구서를 보낸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내심 불쾌했지만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2년 전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범야권은 야권연대를 통해 16곳의 시도지사 선거에서 8곳을 차지하면서 이겼다. 승리의 기억은 너무나 달콤했다.

통진당은 수도권과 호남권 등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도 지역구 몫을 달라고 요구했다. 지역구에선 인물 개인의 경쟁력 등이 중요한데도 다 무시했다. 결국 민주당의 무공천으로 통진당이 야권 단일 후보가 된 지역구가 16곳이나 됐다.

선거 결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의 과반을 차지했다. 야권은 140석(민주당 127석, 통진당 13석)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민주당이 노무현의 치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정책연대에 합의하면서 “정체성이 뭐냐”는 비판을 받았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결과 통진당은 창당 이래 최다 의석을 얻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연대 DNA’는 이처럼 뿌리가 깊다. 정당 차원에선 후보 단일화와 정책연대, 유권자 수준에서는 ‘지역구 투표=민주당, 정당투표=진보정당’의 전략적 투표 행태가 자리 잡아 왔다. 사실상 ‘반(反)보수연합’이었다.

‘나라는 민주당에 맡기셨다면, 정당투표는 정의당입니다!’ 정의당이 작년 6·13지방선거 때 배포한 선거 공보물 제목이다. 정의당은 최근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맞불용으로 검토 중인 비례전문 위성정당을 꼼수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비례민주당’을 자처한 것 같다. 여야가 바뀌었어도 옛 ‘야권연대’가 ‘범여권연대’로 포장만 바뀐 셈이다.

범여권 ‘4+1’ 협의체는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하고 비례대표 30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소선거구제 지역구에서 버려지는 사표(死票)를 줄인다는 명분 아래 군소정당의 비례대표 몫을 늘려주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많이 낸 제1, 2당의 비례대표 몫은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든다. 1, 2당 정당투표 득표율은 대개 40% 안팎인데 이 대부분이 사표가 될 것이다. 지역구 투표와 같은 가치를 갖는 정당투표 가운데 1, 2당이 얻은 득표는 거의 휴지조각 신세가 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모델인 독일은 제왕적 대통령제인 우리와 달리 의원내각제 국가라는 점도 거의 무시됐다.

군소야당은 지역구 선거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비례의석을 늘리는 선거법 개정에 매달렸다. 여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의 처리를 위해선 이들의 표가 절실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정치적 ‘딜’을 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정의당이 호된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여권 편을 든 이유일 것이다. 군소야당은 막판에 민주당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석패율제 철회가 대승적 결단이라고 주장했지만 비례대표 몫 확대라는 실리는 충분히 확보했다.

이 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자유한국당은 비례전문 위성정당인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공당이 비례후보를 내지 않고 별도의 ‘비례 위성정당’을 만든다는 발상은 정치적 꼼수다. 하지만 그 원인은 ‘4+1’ 협의체가 제공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지역구=민주당, 비례=군소야당’의 ‘야권연대’ 프레임이 작동한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기형적 정치의 현장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민주당#정의당#야권연대#선거법#공수처법#4+1 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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