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이은화의 미술시간]〈91〉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6일 03시 00분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년.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년.
12월에 병원을 찾는 우울증 환자가 더 늘어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을 보며 외로움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도시민의 외로움과 고독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림은 야심한 밤 뉴욕 맨해튼 거리에 있는 작은 식당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삼각을 이루는 기다란 바테이블에는 세 명의 손님이 앉아 있다. 이들은 술이나 차 한 잔을 시켜 놓고 여기서 밤을 새울 모양이다.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의 손엔 샌드위치, 옆에 앉은 남자의 손엔 담배가 들려 있다. 커플로 보이지만 서로 대화나 정서적 교감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만이 이들을 응대하고 있다. 또 다른 남자는 테이블 코너 쪽에 혼자 앉아 있다. 요즘말로 ‘혼족’이다. 한 공간에 있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그저 자신의 외로움을 각자 달래고 있을 뿐이다. 환한 실내조명은 그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더 부각시킨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로 평가받는 호퍼는 사실 10년 이상의 긴 무명 생활을 거쳤다. 대도시 뉴욕에 살면서 누구보다 외로움과 우울함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림 속 손님의 모델도 화가 자신과 그의 아내다. 호퍼는 이 그림을 1941년 12월에 시작해 이듬해 1월에 완성했다. 그때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왔을 테고, 연말연시는 들뜬 분위기였겠지만 전쟁으로 세계가 우울하던 시기였다.

전쟁이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듯 외로움 역시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친다. 우울할 땐 내 마음이 곧 전쟁터다. 영국은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로움 장관까지 두고 있다. ‘혼술’ ‘혼밥’ 등 혼자가 트렌드가 되고 외로움이 마케팅의 대상이 된 시대, 마음을 나눌 단 한 사람의 존재가 더욱 귀하고 간절해진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에드워드 호퍼#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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