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 대통령, 지지층에서 벗어나 국민 전체를 바라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0시 00분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얻었고, 국회 선진화법까지 무력화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놓고 여야가 격돌해 아수라장이 된 국회를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국회를 비난만 할 상황은 아니다.

여당은 문 대통령의 권력기관 개혁 1호 공약인 공수처법 처리를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했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군소야당을 끌어들여 전례 없는 ‘4+1’ 협의체를 만들었고, 군소야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주는 선거법을 선물하는 뒷거래를 했다. 500조 원이 넘는 국가 예산도 막판에 ‘4+1’ 밀실 협상에서 조정했다. 이 모든 과정에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욱이 공수처법 표결 직전 ‘4+1’ 내부 이탈표가 우려되자 여당은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획정한다’는 합의서까지 만들어 줬다. 향후 선거구 획정 시 군소야당 후보들의 지역구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사실상의 매표(買票) 행위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범여권 ‘4+1’ 체제는 철저한 편 가르기 전략의 결정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지난 한 해 상식과 순리가 배척당하고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 진통의 순간마다 국민들은 중재와 통합의 중심추가 될 리더의 존재를 갈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친문 지지자 편에 섬으로써 국론 분열을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제 발표된 연말 사면마저도 친여 성향 인사들을 대거 포함시켜 코드 사면이 됐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득주도성장의 정책기조를 수정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빗발쳤지만 수정 불가로 정리됐다. 정책기조를 고수하라는 지지층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집권 4년 차를 맞았다. 국민들에게 하나씩 정책 성과를 보여야 할 때다. 국민 전체가 아니라 지지자들의 요구에만 부응하는 통치는 정권은 물론 나라의 미래마저도 망칠 수 있다. 지지층만 결집한다면 총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정치적 계산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이익과 지지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뛰어넘어 국론 통합의 리더십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지층만 쳐다보지 말고 도도한 민심의 저류를 읽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공수처법#4+1 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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