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삶의 전부를 걸어도 좋다는 ‘문청(文靑)’들에게 신춘문예는 앓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지독한 열병’이다. 새해 벽두 신문 지면에 오른 이에게는 기쁨이지만, 대부분은 다시 길고 긴 자신만의 싸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죽하면 ‘문단고시’라고 했을까.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전민석 씨는 그 당시를 ‘방문 밖 식구들 한숨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도, 손은 어느새 자판 위로’라고 표현했다.
▷일간신문사가 매년 1월 1일자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문인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에게만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도 약 20곳에 남아 있다. 191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격인 매일신문이 ‘신년문예’를 모집한 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925년 동아일보가 시작한 신춘문예를 출발로 본다. 문예란(단편소설 시), 부인란(가정소설), 소년란(동화극 가극 동요)으로 나뉘었고 분량 제한은 없었다. 각 부문 1등 상금은 50원이었는데, 당시 경성의 쌀 한 말이 3∼4원, 한 달 하숙비가 15원 정도였다고 한다.
▷신춘문예를 통해 싹이 튼 씨앗들은 한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숲을 이뤘고 숱한 거목으로 솟았다. 퇴고를 거듭하다 마감을 넘긴 응모자를 인정상 받아줬다가 공교롭게 그가 당선이 되는 일도 있었다. 이메일 접수 초기 한 응모자는 “신춘문예 담당자입니다”란 전화에 감격에 차 울먹였는데, 사실은 원고가 첨부되지 않았으니 다시 보내달라는 전화여서 서로 머쓱해졌다고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법률 의학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디지털과 영상이 대세가 된 요즘도 시 쓰기의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하며 밤을 지새우는 문학청년들은 끊임없이 배출된다. 신춘문예에 매년 수천 명의 응모자가 몰리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과거 신춘문예 심사위원 중에는 결선에 오른 제자의 작품을 가차 없이 탈락시킨 스승도 있었다. 재주만 승해 일찍 데뷔하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라니 글과 인간됨을 동일시한 그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신춘문예의 좁은 문을 통과한 작가들이 롱런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누구나 글을 올리고 평가받는 세상이다. 데뷔 방식이 다양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미숙한 글이 넘쳐 상처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혹독하게 단련시키고, 익지 않은 글이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지 않는 과정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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