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웃들, 민간이 나서야 한다[동아 시론/예종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4일 03시 00분


성탄 앞두고 생활고에 일가족 자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그늘
정부 복지 닿지 못하는 곳 너무 많아
美 복지단체, 개인 소액기부가 85%… 십시일반 정신으로 사람들 살려야

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요즘 들어 도저히 믿기 싫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 직전, 대구에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되는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여성과 아들, 딸 등 네 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함께 목숨을 끊었다. 같은 달 경기 양주시에서도 일가족 사망 사건이 있었고, 그 직전에는 서울 성북구에서 70대 할머니와 40대 딸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2019년 한 해에만 이렇게 참혹한 일들이 20건가량 벌어졌다. 이것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일이고,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 분야 예산만 연 60조 원을 상회하는 나라의 국민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지역사회와 고립돼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위기 가정의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신청하지 않으면 도움을 얻을 수 없는 복지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해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절대빈곤층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빠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퍼주기식 과도한 복지예산’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지만 우리 복지예산은 선진국의 수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정부를 탓하고 예산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긴급 지원을 필요로 하는 위기의 이웃들이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홀몸노인 고독사 문제, 복지시설 퇴소 청소년 문제, 다문화가정 폭력 및 아동학대, 북한 이탈주민 정착 지원 체계 문제 등 복지 수요는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새로운 수요에 대한 파악이 미처 안 돼 정부 복지정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많다. 복지 사각지대의 급한 불은 책임 소재를 따질 것 없이 민간 차원에서라도 꺼야 한다. 이럴 때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민간의 나눔은 유난히 골이 깊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세금이 아닌 자발적인 배려로 메울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사랑의 열매’가 하는 일이 특히 소중하다. 사랑의 열매는 매년 6000억 원가량의 국민성금을 모아서 약 3만 곳의 사회복지기관에 배분한다. 사랑의 열매는 자체 사업은 하지 않는다. 배분이 사업이다. 지원 대상에는 대한적십자사나 사회복지협의회 같은 대형 기관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체 모금이 힘든 영세한 단체들이다. 각기 다른 사업을 하는 수많은 기관에 배분함으로써 날로 새로워지는 복지 수요에 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같이 모금 여건이 어려우면 협력 기관들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중압감을 느낀다. 힘든 이웃은 이럴 때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경제 여건 탓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통 크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속 시원한 기부도 있어 세상을 살맛 나게 해준다.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2018년 51억 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20억 원을 사랑의 열매에 기부했다. 김 대표는 그 20억 원을 음식 배달 중 사고를 당한 외식업 종사자들의 의료비와 생계비로 써달라고 했다. 배달원 중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보험 가입이 안 되는 등 딱한 경우가 허다하다. 김 대표는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복지 사각지대를 핀셋처럼 집어내 지원하는 셈이다.

그러나 고액 기부만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소액 기부도 어려운 이웃에게 온기를 전한다. 미국판 사랑의 열매 격인 유나이티드웨이는 전체 모금액의 85%가 개인들의 소액 기부로 이루어진다. 그중의 상당수는 봉급생활자들의 소액 자동이체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도 많은 국민들이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기부에 동참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 모금은 이달 31일 끝난다. 부디 온도계가 100도를 넘어서기를 기원한다.
 
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복지#소액기부#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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