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2020년 새 아침을 맞았지만 시장에 새로 들어와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온 스타트업 기업인들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배달의민족(배민)’은 사무실 한 칸 없이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의 한 카페에서 창업해 전단을 주워 와 입력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 배민이 가진 것은 꺾이지 않는 도전정신뿐이었다. 100년 전 동아일보 또한 이런 스타트업과 다르지 않은 도전정신으로 첫해를 시작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올해는 창업 10년 차이자 새로운 출발의 해다. 2020년을 무척이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맞으며, 앞으로 한국의 100년 기업사를 이끌어 나갈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소회와 그 안에서 우아한형제들의 미래를 그려 보고자 한다.
2020년대는 그간 글로벌 테크 패권을 이끌어왔던 유니콘 기업들을 비롯해 각국의 스타트업에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실리콘밸리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의 상장 철회로 시작된 벤처 거품 논란은 우버와 리프트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벤처투자 붐을 거쳐 온 스타트업 업계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정기일수록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더 먼 미래를 그리며 경영 계획을 현실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적자를 줄이고 생존을 위한 고삐를 더욱 죄어야 한다. 이 조정기를 살아남는 기업엔 100년의 미래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냉정하게 정리되고 말 것이다. 이 구조조정의 파고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전면적이고 혹독한 구조조정이 글로벌 시장에 몰아칠 수 있다.
지난달 필자는 전 세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1위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와 손잡고 아시아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토종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었던 우아한형제들의 이 인수합병(M&A)은 글로벌 시장이 급변하는 국면에서 이뤄진 것이다.
기업가는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단 몇 개월 만에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것이 요즘 기업이 직면한 경쟁의 현실이다. 매일, 매시간 몸담고 있는 업계와 시장을 들여다보고 글로벌 업체들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런 매 순간이 쌓이고 쌓여 생존을 기약할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구글의 미래’를 쓴 토머스 슐츠는 “20세기의 도구로는 21세기를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 혁신 기업가라면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변화의 움직임들이 3, 4년 뒤 자기 기업에 어떤 영향으로 다가올지 미리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푸드 딜리버리 시장 또한 글로벌 테크기업들이 주도해온 거대한 변화의 물결과 구조조정의 한 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이 사업을 시작한 초기만 해도 ‘그게 무슨 사업이 되겠느냐’는 냉소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푸드 딜리버리 시장은 크게 변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사업을 시작한 뒤 국내 시장은 9년 동안 두 배 이상 커졌다.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업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은 2018년 세계 온라인 음식 배달 시장 규모를 820억 달러(약 95조5000억 원)로 평가했고, 2025년에는 이 시장이 2000억 달러(약 232조9600억원)까지 성장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시장을 잡기 위한 경쟁에 국경이 없어진 지 오래다. 전 세계 푸드 딜리버리 업체들은 ‘빅3’로 활발하게 재편되고 있다. 업계 2, 3위인 영국 기업과 네덜란드 기업이 합병을 추진 중이다. 다른 한편에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전펀드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기업들이 푸드 딜리버리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전 세계 4위인 우아한형제들로서는 업계 1위인 딜리버리히어로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미래 산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미디어 시장 플레이어들은 국경을 넘어 들어온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화력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장외에선 콘텐츠 시장의 강자인 디즈니와 애플까지 등판해 무섭게 세력을 키우고 있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과 와츠앱 등 계열 서비스로 글로벌 소셜미디어 시장을 재편하다시피 했다.
어떤 분들은 우아한형제들을 향해 ‘한국에서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국경이 무의미해진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 그런 생존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한국 안에서 얼마 동안은 편하게 생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서서히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필자의 솔직한 전망이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터넷 업계에는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기업들이 수도 없이 많다. 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구조조정의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토종 유니콘이라는 과분한 타이틀과 함께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온 만큼 이번 M&A 이후 우아한형제들에는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비난의 글을 읽으며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당연히 모든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말을 달궜던 우아한형제들의 M&A 뉴스가 먼 미래 한국의 벤처 역사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표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투자업계에는 그간 ‘한국 기업에 투자하면 회수가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을 두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거품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던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4조7500억 원이라는 기업가치 평가가 실제 M&A 계약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성공적으로 자금을 회수한 글로벌 투자 업계가 ‘제2, 제3의 배민’을 찾아 이 땅의 창업자들의 꿈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기업의 국적은 자본의 출처가 아니라 일자리와 사업자가 실제 있는 곳을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번 우아한형제들의 결정이 이 땅의 1400여 명 구성원들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결정이었고, 기업의 생존과 동시에 성장의 길도 확보한 결정이었다고 필자는 믿는다.
많은 분들이 M&A 후 수수료 인상을 우려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딜이 성사됨으로써 배민이 수수료를 올릴 이유가 되레 줄었다. 아시아 전체에서 성공하려면 한국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성장도 빠른 신흥 시장에서의 성적이 중요하다. 국내 수수료율 인상에 의존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해외 시장 개척에 박수와 응원을 받으며 나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송구스럽다. 또 낯선 해외 시장에서 배민의 성공 방정식이 통할지도 현재로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저 ‘1%의 가능성만 있으면 도전하라’는 어떤 선배 기업인의 말씀을 새기고 10년 전처럼 앞을 보고 나아가려 한다.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는 혁신하고 사업가는 모방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급속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고 한다. 기술혁신으로 전통적인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겠지만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그에 따라 전에 없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벤처기업들이 국경 없는 글로벌 융합 서비스 산업에 도전하고 시장을 선점한다면 우리 청년들이 뛰어들 수 있는 ‘일자리 운동장’이 무한대로 커질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성공이 아시아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
2020년 한국에 더 많은 기업가가 탄생하길, 제2·제3의 우아한형제들이 태어나길, 그리하여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맥이 되어주길 바란다. 끊임없이 혁신하려는 정신으로 오늘 하루도 뛰고 있는 이들을 국민들이 긴 호흡과 따뜻한 눈으로 봐주면 좋겠다. 경자년(庚子年) 희망의 새 태양이 모든 가정과 기업을 환하게 밝혀 주길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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