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의 약 10%, 고3 학생 5만 명이 4월 총선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 만 18세 선거권,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문제는 아무런 준비 없는 교실에 정치가 덜컥 들어왔다는 점이다. 척박한 시민교육의 풍토 속에서 교실이 겪을 후유증을 예고한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지난해 10월 부산 A고교 교사는 조국 가족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을 비판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인용한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했다. ‘보아라 파국이다… 바꾸라 정치검찰’이란 지문을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인물을 고르도록 했다. 정답은 조국과 윤석열.
이보다 한 달 앞서 B고교 교사는 수업 중 정치적인 발언이 문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선전 효과를 노리고 대법원 판결에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등의 발언이 녹취돼 공개된 것이다.
특별감사에 나섰던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두 교사를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수업과 평가’라는 교사 본연의 업무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아 징계를 받는 첫 사례라고 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정치 편향 교육을 한 교사를 징계한 선례를 찾을 수 없었다”며 “법률 자문 등 철저한 법적 검토를 거쳐 징계를 결정했다”고 했다.
이번 결정은 만 18세 선거권으로 고3 교실의 정치화, 이념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교사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좌우를 넘어 학교 내 갈등을 불러올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했다.
A고교 교사 징계의 근거는 공교육 정상화 및 선행학습금지법이다. 이 법은 지필평가, 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수업에서 물의를 빚은 B고교 교사는 ‘교육은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방편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교육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4월 총선을 앞둔 교육계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그러나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학생의 후보자 선택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후 징계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2015년 일본은 선거 연령을 만 18세 이하로 내리면서 1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동안 문부과학성은 선거교육 교재를 배포하고 학생 정치활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교내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을 이용한 정치활동은 금지했고 방과 후나 휴일에 학교 밖에서 실시하는 정치활동은 허용했다. 선거법처럼 연령 제한이 있는 국적법, 아동복지법 등 법령 212개와 상충하는지도 검토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선거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사의 중립성 훼손에 대한 제재는 필요한지, 학교 내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것인지, 만 19세가 성년인 민법과의 충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여당과 군소 정당은 이번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며 득표 계산기만 두드렸을 뿐 이를 보완할 그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차차 보완하면 된다고 한다. 입시를 앞둔 고3 교실을 실험실로 만들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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