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부산 해운대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같은 시각, 동해안에도 해돋이 인파가 몰렸다. 이런 광경을 뉴스 화면으로 보는 독자나 시청자들은 전혀 이상한 점을 못 느낄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밤새 장거리 운전을 해 일출을 기다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는 연말이면 전 세계에서 전송된 새해 사진을 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나 파리 개선문 같은 랜드마크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새해 0시에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하는 모습이 전부다.
외국 사진과 비교하면 한국의 ‘해맞이’ 사진은 독특하다. 해를 보기 위해 심야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고, 대통령 또한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해맞이 산행을 한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새해 축하 비행’까지 한다. 혹자는 지자체의 해맞이 소원 마케팅이 빚어낸 요란뻑적지근한 하루짜리 행사쯤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해 사랑은 1월 1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명소라 불리는 곳은 사계절 내내 일출을 보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일출’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한국인들의 이런 정서에다 신문의 제작 관행상 사진기자들은 매년 말이면 특별한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에너지를 쏟는다. 숨겨진 일출 장소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인다. 최근 한 사진기자는 독도를 품은 일출 사진을 찍었다. 독도의 동도와 서도 사이에 해가 뜨는 정확한 시간과 각도를 계산해 87km 떨어진 울릉도에서 보름간 머물며 초망원렌즈로 촬영했다. 사람에게 미(美)의 기준이 있듯 태양도 ‘얼짱 각도’가 있다. 사진기자가 생각하는 가장 잘생긴 해는 수학의 오메가(Ω) 기호 모양으로 떠오르는 해다. 태양이 해수면으로부터 떨어지기 직전을 포착하면 오메가 모양의 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낮은 해수면 온도와 미세먼지 없는 날씨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메가를 찍으면 ‘심봤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경남에 있는 동료 사진기자는 페이스북에 ‘7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에서 오메가를 찍었다’며 감격한 감정으로 글과 사진을 올렸다. “새해부터 복 받으셨네요”라는 축하 댓글을 써줬다.
태양을 찍기 위해 해외 출장을 갔던 사례도 있다. 지금은 은퇴한 동아일보 사진부 선배는 1990년대 말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뜨는 해를 찍기 위해 날짜변경선에서 가장 가까운 남태평양 피지로 출장을 갔다. 여름 바다는 덥고 습해 오메가를 담을 때까지 찍다 보니 출장 기간이 한 달이나 걸렸다. 출장지를 감안하면 얼핏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길어지는 출장에 압박감도 비례했을 것이다.
‘오메가’가 바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백두산 일출’은 우주의 기운을 모아야 성공할 수 있다. 목욕재개를 하고 조상님을 향해 큰절하고 올라가도 백두산 일출은 찍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급변한 남북관계에 백두산에서 해 뜨는 사진을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취재했는데 영하의 추운 날씨에 비바크를 허락하지 않는 백두산에서 불법을 감행하고 기다린다 해도 정상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백두산 일출은 100번 올라가야 두 번 본다’는 말도 생겼다.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에는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바다와 함께 있는 한려해상까지 명산이 즐비하여 산 정상에서 보는 일출의 맛이 제각각 다르다. 여기에 삼면의 바다까지 포함하면 전 국토가 해맞이 장소인 셈이다.
일출 사진은 이제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고 순간을 기다린다.
드디어 새해 첫 해가 뜬다. “우아!” 감탄의 소리와 함께 모두 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있을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해 사진이 올라가 있을까? 한날한시 모르는 사람이 모여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플래시몹이라면 한국의 해맞이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규모가 큰 플래시몹일 것이다. 우리는 왜 일출 사진을 많이 찍는지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확실한 사실 하나. 전 세계가 잠들어 있을 때 한국은 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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