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아 외국에 파견된 외교사절을 말한다. 대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앰배서더’의 어원도 라틴어 ‘암바크투스(Ambactus)’로 신하, 하인 등의 의미가 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은 16세기 대사의 모습을 시대상과 함께 보여주는 걸작이다. 독일 태생이지만 영국의 궁정화가로 일했던 홀바인은 1533년 프랑스 대사들의 런던 방문을 기념해 이 그림을 그렸다. 가로, 세로 각각 2m가 넘는 거대한 화면 안엔 실물 크기의 두 남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초록 커튼을 배경으로 진귀한 물건들이 얹어진 선반을 사이에 두고 서 있다. 값비싼 모피코트를 걸친 위풍당당한 왼쪽 남자는 당시 29세의 장 드 댕트빌로 프랑수아 1세가 영국의 헨리 8세 국왕에게 보낸 외교 사신이다. 오른쪽 남자는 장의 친구이자 성직자였던 조르주 드 셀브로, 당시 25세였던 그 역시 훗날 프랑스 대사가 된다.
선반 위쪽엔 해시계와 다양한 천문 관측기구들이 터키산 카펫 위에 놓여 있고, 아래쪽에는 지구본과 산술 교과서, 찬송가 책과 줄이 끊어진 류트가 보인다. 이 물건들은 지식과 교양, 예술과 종교를 상징한다. 특히 류트는 조화를 상징하는 악기인데 줄이 끊어졌다는 건 신교와 구교, 학자와 성직자의 갈등을 암시한다. 당시 유럽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 갈등이 심했고 과학의 발전으로 지식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영국이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는 걸 막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띠고 런던에 온 것이다. 사실 그림에서 가장 주목할 곳은 하단에 그려진 심하게 뒤틀린 해골이다. 이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상징이다.
홀바인은 권세와 지식, 교양을 두루 갖춘 대사의 초상에 이렇게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 넣음으로써 왕의 신하는 물론 최고의 권력자인 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부와 권력, 세속적 성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고 평화롭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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