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고속철도(KTX)가 개통한 뒤 ‘KTX 빨대효과’란 말이 나왔다. 지방 도시들이 1, 2시간 남짓에 오갈 만큼 가까워진 서울의 흡인력에 빨려들 것이란 얘기였다. 실제로 교육 의료 문화 등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서울은 지방의 인력과 자원을 쭉쭉 빨아들였다. 서울 부동산만 독보적으로 가격이 오르더니 급기야 ‘평당 1억 원’ 아파트마저 등장한 데는 지방 부호들이 서울에 투입한 자금도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처음 전체 인구의 50%를 돌파했다(지난해 12월 기준). 대한민국 전체 인구 5184만9861명 중 50.002%가 수도권에 모여 산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1960년 20.8%에서 1980년대 35.5%, 2000년 46.3%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이나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추진하면서 2011∼2015년 잠시 주춤했지만 2016년부터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 효과가 크지 않고 후속대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살기 좋은 곳으로 인구가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도 있다. 일자리나 문화·교육·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된 게 현실이다. 문제는 대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부와 시장에 자신의 생존을 맡길 수밖에 없는 불안한 젊은이들은 아이 낳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도시 집중과 인구 감소, 서로 원인과 결과가 얽힌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 끊을 수 있을까.
▷도쿄 등 수도권에 인구 3700만여 명이 집중된 일본에서는 2013년 한 보고서가 화제를 모았다. 민간 연구단체가 ‘지방소멸-도쿄일극(一極)집중이 부른 인구 급감’이란 제하에 낸 보고서는 도쿄가 ‘인구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가 진학과 취직으로 젊은이들을 빨아들여 지방 인구 감소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적 대응책으로 지방 산업 융성과 인구 유치를 위한 방안들을 제안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담당할 ‘지방창생’ 부처를 신설했다. 지방소멸 가능성을 가늠할 때 젊은 가임여성(20∼39세)의 인구동향을 주목했고 지역마다 출산 육아가 가능한 젊은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국가비상사태’라며 정부가 균형발전을 추진할 강력한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인구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색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을 살리겠다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옥석이 가려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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