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면 학교 도서관에 보고 싶었던 책을 빌리러 간다. ‘이런 멋진 책도 나왔구나!’ 신착 도서 코너에서 흥미로운 책을 발견할 때면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다. 눈이 쌓이듯 세상에 소리 없이 다양하고 수많은 책이 쌓인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은 전공 서적이 아니라 소설이나 절판된 오래된 문화교양서, 또는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이다. 방학 동안 그간 읽고 싶었던 책을 자기 전 침대에서 새벽까지 읽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대학생 때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정적이고 멋진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창문 옆 서가에 자리 잡고 책을 읽는 시간은 내 젊은 날의 가장 푸르른 시절이었다. 도서관 불이 꺼지고 어둠이 깔린 학교 언덕길을 내려갈 때의 충만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방학 중의 도서관은 먼지가 가라앉은 것처럼 한가하다. 그에 비해 학교 앞 카페는 컴퓨터를 앞에 두고 열심히 뭔가를 하는 학생들로 북적북적하다. 1990년대 초 미국 시애틀대에서 열린 학회에 방문했다가 그 대학의 도서관을 들렀던 때가 기억난다. 시애틀은 유명한 커피전문점 1호점이 있는 곳이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커피 향이 진동했다.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모여서 그룹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커피 향처럼 살아 움직였다. 입구에서 커피를 끓이는 바리스타가 마치 도서관 사서처럼 모든 사람을 반겨주는 듯했다. 그때 우리 대학 도서관도 커피 향과 더불어 책과 젊음이 함께 살아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예술가적 기질이 남다르고 글도 잘 썼던 과학자였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물리학 외에 광범위한 분야에 흥미를 가졌다. 화학을 공부한 후 이탈리아 회화를 공부했으며, 식물학을 공부해 식물의 계통 발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고대 문법이나 독일 시에 대해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1933년에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발표했는데, 이 파동방정식은 입자이면서도 파동이었던 빛의 이중성 문제에 대해 깜짝 놀랄 만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고전물리학에서의 뉴턴 방정식처럼, 이 파동방정식은 미시 세계의 운동을 기술하는 양자역학의 가장 핵심적인 방정식이 되었다. 1933년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슈뢰딩거의 관심사는 무척이나 폭넓어 노벨상을 받은 후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판했다. 물리학자로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기술한 책이었다. 이 책의 영향으로 양자생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그의 인문학적 성찰의 깊이는 아마도 호기심으로 무장된 독서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정적인 도서관이 학교 앞 카페처럼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학생들을 끌어당겨 서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어떨까. 그리고 카페의 커피 향처럼 학생들이 도서관에 머물면서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올 한 해 내 키만큼의 높이로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한번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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