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포퓰리즘 독재의 길, 가는 것도 막는 것도 國民 몫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3일 03시 00분


‘검찰개혁’이라고 말하지 말라… 正名 욕되게 하는 ‘검찰 장악’
절반 가까운 국민 지지 자신감… 브레이크 없는 정권 폭주 動力
포퓰리즘 독재, 철권통치보다 위험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검찰 개혁’이라고 말하지 말라. 정부가 하는 개혁은 그 목적이 국리(國利)와 민복(民福)에 있어야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검(檢)의 칼로 상대편을 찌를 땐 박수치더니, 제 편을 찌르니까 수족을 잘라버리고 ‘항명’ 운운하며 정당한 수사를 봉쇄하는 걸 개혁이라고 한다면 개혁의 정명(正名)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그런 건 ‘검찰 장악’이라고 해야 바른 이름이다.

공자는 정치란 정명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 개혁의 정명을 망가뜨리면서 반드시 필요한 검찰 개혁의 대의(大義)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현 정권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또 어떤 걸 ‘개혁’이라고 쓰고 ‘장악’이라고 읽을지,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정명이 틀어지면 매사가 틀어지는 법. 청와대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내치면서 연출한 뒤틀린 상황극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울산시장 선거공작과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사건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현 법무장관과 청와대 민정, 공직기강비서관이 인사를 주도한 것 자체가 기막힌 부조리극이다. 이번 인사가 여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막 나간 건 인사 담당자들이 수사 대상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조국 아들 허위 인턴 사건에 연루된 그 공직기강비서관은 조국의 장관직 검증까지 맡았으니 말 다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사람은 바로 그 중앙지검의 수사 대상이다. 지난해 9월 조국 장관 취임 직후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조국 수사팀을 꾸리자”고 제안한 의혹이 드러나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이 수사 주체를 인사하고, 수사 대상이 해당 수사기관의 장(長)이 되는 이 막장 드라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해 말 선거법 강행처리로 가속페달을 밟은 현 정권의 폭주에 브레이크가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까지 강행처리한 정권은 새해 업무가 시작된 2일 아침 추미애 법무 임명도 강행한 데 이어 6일 만에 속전속결로 검찰 장악 인사까지 해치웠다. 정권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임박한 터에 앞으로도 ‘형식적 눈치’조차 보지 않고 마구 밀어붙일 것이다.

행정권력을 장악한 데다 사법권력을 사실상 장악했으며 입법권력까지 듣도 보도 못한 ‘4+1 협의체’로 비틀어 거머쥔 권력은 거침이 없다. 이런 정권은 없었다. 과거 3권을 장악한 독재정권도 정통성 콤플렉스 때문에 국민의 눈치를 보고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세웠다. 그 독재권력과 현대사의 숱한 굴곡을 헤치며 대한민국이 이만큼 온 데는 현명한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현 정권 독주의 기반이 그 국민이다. 정권이 무슨 일을 벌여도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며 지지할 거란 자신감. 그게 바로 동력(動力)이다. 언제부터 많은 우리 국민이 조국류의 비상식과 비도덕, 심지어 불법까지 용인하고 정권의 폭주에 눈을 감아버리게 됐을까. 가짜뉴스 범람으로 판단 기준이 흐려진 데다 유시민류 선동가들의 궤변, 정권이 앞장서 계층 갈등을 불 지른 ‘편 가르기’에 속절없이 넘어간 걸까.

분명한 건 있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독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권력에 의한 독재보다 위험한 것이 포퓰리즘 독재다. 정치권력에 의한 독재는 국민이 현명하면 이겨낼 수 있다. 우리 역사가 이를 웅변한다. 그런데 포퓰리즘 독재는 달콤한 독(毒)과 같아서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어려운 늪이다. 한때 잘나갔다가 포퓰리즘 독재로 몰락한 남미 국가들을 보라.

4·15총선이야말로 대한민국이 포퓰리즘 독재의 길로 가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기로(岐路)가 될 것이다. 이 역사적 선택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사분오열인 중도·보수세력이 소리(小利)를 앞세워 통합에 재를 뿌린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정당 사상 최악의 공천으로 무더기 금배지를 단 자유한국당 내 친박(親朴) 세력이 탄핵을 사상검증 잣대 삼아 통합의 걸림돌이 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워 호가호위(狐假虎威)하다가 정권을 말아먹고 폐족(廢族)이 돼야 마땅한 사람들이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숨통이 트였다고 준동해선 안 된다. 전 정권 때 박 전 대통령과 친박의 일방독주가 그랬듯, 포퓰리즘 독재로 치닫는 문 대통령과 친문(親文)의 질주를 막아내야 하는 것도 결국 우리 국민의 몫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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