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 영화와 교차편집[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3일 03시 00분


<9> 아이리시맨과 美드론 공습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의 한 장면. 미국 범죄 조직의 이야기를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의 한 장면. 미국 범죄 조직의 이야기를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아이리시맨’이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이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등 미국 고전 갱 영화들에 출연했던 명배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쟁 영화가 실제 전쟁을 그대로 담지 않듯이 갱 영화가 실제 갱을 그대로 담지는 않는다. 갱이 아니라 갱에 관한 어떤 꿈을 담는다. 악몽이되, 때로 아름답기도 한, 기이한 꿈을 담는다.

갱스터는 영화에서 협박을 가하고, 총을 쏘고, 목을 조르고, 피 묻은 손을 씻는다. 그리하여 세상은 강자들의 잔치 같아 보이지만, 사실 갱스터는 약자다. 갱스터의 세계란 신대륙에 뒤늦게 건너온 약자들이 합법적인 삶의 경로를 찾지 못했을 때 도달하는 곳이다. 아직 기력이 남아 있는 누군가 그저 약자로만 찌그러져 있지 않겠다는 야심을 가졌을 때, 그러나 합법적인 통로로는 도저히 권력에 접근하기 어려울 때 갱스터의 길을 가게 된다.

사회의 진정한 강자는 갱스터처럼 명시적인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총을 드는 대신 정갈한 레스토랑에 가서 유력자들과 잘 준비된 만찬을 즐긴다. 가장 명시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폭력은 말단 조직원의 몫이다. 피비린내 나는 총격이 시작될 때, 온유함과 명민함을 갖춘 보스는 거실에서 고양이 털을 쓰다듬거나 맛있는 파이를 한 조각 잘라 입에 넣는다.

불법의 협궤 열차에 올라탄 인생은 쉽게 선로에서 내릴 수 없다. 옛날 고등학교 유도부처럼, 가입은 쉬워도 탈퇴가 어려운 곳들이 있다. 탈퇴하고 싶으면 500대 맞고 나가라. 선로에서 내리는 일이 불가능할 때, 결말은 파국으로 정해져 있다. 남은 선택지는 어떤 자세로 얼마나 멀리 가느냐일 뿐. 갱스터 영화는, 왜 사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게 인생 아니냐며 미친 듯이 살다가 병든 육신을 갖게 된 이들이 보기에 좋은 영화다.

영화 속에서 이 도착(倒錯·뒤바뀌어 거꾸로 됨)된 삶에 대한 가장 냉정한 평가자는 여자들이다. ‘대부’에서 아내는 갱스터 마이클의 아이를 일부러 유산하고 떠난다. 아이리시맨에서 딸은 마모된 육신을 질질 끌고 직장으로 찾아온 늙은 갱스터 아버지를 끝내 외면한다. 남편들과 아버지들은 입을 모아 변명한다. 이 짐승 같은 세상에서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일일 뿐이라고. 너희가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이라고. 나의 불법 때문에 너희의 합법이 가능했다고. 그들은 용서받지 못한다.

갱 영화를 상징하는 영상 언어는 교차편집이다. 대부1의 클라이맥스. 상대를 살육하는 장면과 아이의 세례식에 참석하는 장면이 교차편집된다. 가장 속(俗)스러운 장면과 가장 성(聖)스러운 장면이 리드미컬하게 갈마든다. 속으로 인해 성은 더욱 성스러워 보이고, 성으로 인해 속은 더 속스러워 보이다가, 결국 성과 속의 구별이 와해된다. 세례가 살해처럼 보이고, 살해가 세례처럼 보인다. 아이리시맨에서 교차편집 역할을 대신한 것이 꽃다발 너머의 총격신이다. 상대를 살육하는 총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카메라는 집요하게 아름다운 꽃다발만 응시한다. 총성이 꽃다발의 비명처럼 느껴질 때까지.
미국의 드론 공습에 불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차량. AP 뉴시스
미국의 드론 공습에 불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차량. AP 뉴시스
1월 3일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드론을 이용해서 특수부대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지인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이 언론 기사 역시 교차편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살육을 전한다. 성당의 세례식과 난폭한 총질이 교차편집되었던 것처럼, 아랍권 성지 바그다드에서의 살해 장면과 패권국 수도 워싱턴에서의 아이스크림 장면이 갈마든다. 누런 흙 위에 뿌려졌을 붉은 피, 그리고 붉은 혀 위에서 녹았을 하얀 아이스크림.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아이리시맨#갱스터#대부#교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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