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어린이집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18개월 미만인 아이를 하루 맡기는 데 많게는 약 16만 원이 든다. 어린이집 종일반 비용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3%인데 스위스는 17%다. 한국은 4%. 국민소득이 세계 2위인 부자 나라 스위스에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료다. 왜 유독 어린이집만 비싸게 받는 걸까. 스위스인들은 만 3세까지는 부모가 직접 키우라는 취지로 해석한다.
▷아이는 부모 손에 커야 좋다는 건 상식이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은 아이에게 최선의 양육환경이 친부모가 있는 ‘원(原)가정’임을 전제로 한다. 한국 아동복지법도 ‘원가정 보호’가 원칙이다. 하지만 부모와 사는 집은 아동 학대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12일엔 장애를 가진 9세 아들을 찬물이 담긴 욕조에 방치해 숨지게 한 30대 계모가 구속됐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2016년에도 두 차례 학대 신고가 접수돼 부모와 격리됐다가 2018년 2월 친부의 요청으로 부모에게 인계됐다는 점이다. 아이는 학대당했던 집으로 돌아간 지 2년이 되지 않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아동학대 2만2367건 가운데 76%가 부모에 의한 학대였다. 10명 중 1명은 재학대를 당했는데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95%나 됐다. 다시 학대당할 게 뻔한데 집으로 돌려보내다니, 아이가 상습 학대를 받도록 사회가 손놓고 있는 것 아닌가.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가정 보호 원칙은 지켜져야 하지만 학대당한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동안 원가정을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원가정이 준비가 됐는지 따져본 후 아이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영화 ‘가버나움’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사는 시리아 난민 소년이 “스웨덴에선 아이들이 병에 걸려야만 죽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방치 혹은 학대 속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꼬집은 대사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인 나라에서 아이가 부모 손에 죽는 일이 벌어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부모가 자격이 안 된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피해 아동과 가해 부모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제화하는 법은 몇 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검진 항목에 학대 관련 지표만 추가해도 학대 위험에 놓인 아이들을 늦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적어도 재학대만은 막을 수 있어야 그게 나라다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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