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대표 친구에게 벌써 줄 대려 난리… 막장공천 악몽 떠올라”[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4일 03시 00분


2016년 막장공천 목격자 장성철 전 새누리당 대표 부실장

7일 장성철 전 새누리당 대표 부실장(50·오른쪽)과의 인터뷰는 비를 맞으며 진행했다. 장 전 부실장은 “과거에 대한 복기가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나은 선택의 밑거름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날씨처럼 인터뷰 내내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일 장성철 전 새누리당 대표 부실장(50·오른쪽)과의 인터뷰는 비를 맞으며 진행했다. 장 전 부실장은 “과거에 대한 복기가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나은 선택의 밑거름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날씨처럼 인터뷰 내내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이진구 논설위원
《보수 악몽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20대 총선 ‘막장공천’. 2016년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은 입 가진 사람이면 욕하지 않는 이가 없는 막장 드라마였다. 지금 지나간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오만은 과거 새누리당을 넘어섰고,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 총선까지는 불과 석 달 남짓. 이 인터뷰는 불과 4년 전 총선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복기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당시 당 대표실에 있긴 했지만 공천 내막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지 않나.

“전부 알 수는 없고… 그때 김무성 대표 보좌관이면서 부실장을 겸했는데, 정무·공보 담당인 데다 총선 업무를 맡았다. 또 내가 신한국당 당직자 공채 출신이고,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캠프 공보팀장도 지내 당시 청와대·공천관리위원회와 대표 간의 가교 역할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 공천 과정은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비례대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가 6명을 찍어 내려보냈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반드시 당선돼야 할 사람이라며 강효상 최연혜 유민봉 김현아 신보라 현 한국당 의원을 찍어 내려보냈다.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깜’이 안 돼 누군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청와대 총대를 멨던 이한구 공관위원장조차 ‘어떻게 이런 사람을 시키느냐’며 순번을 뒤로 멀리 뺄 정도였으니까. 신보라 의원은 발표 전날까지는 당선권 밖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앞쪽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안 건가?) “발표 전날 최종 명단을 봤으니까. 이 공관위원장이 직접 애기도 했고….” (김현아 의원은 한국당 탈당파와 뜻을 함께한 사람인데 청와대가 챙겼다니 좀 의외다.) “김 의원은 본인이 공천을 받기 위해 끈을 대거나 뛰어다닌 쪽은 아닌 걸로 안다. 박 전 대통령이 전문 분야에서 똑똑한 여성을 좋아하는데 그런 차원이었던 걸로 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친박계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승인 등 불법 공천 개입으로 2년형이 확정됐다. 그것뿐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데 정말 꼼꼼히 살피고, 아무나 안 쓰는 건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 때 청와대에 지원한 행정관들 이력서까지 직접 봤다. 화환 보내는 곳도 직접 결재하고.” (이유가 있나?) “화환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 같다. 2006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1년 앞두고 경선 캠프가 만들어졌는데 나는 후보 일정 담당이었다. 매일 올리는 일정보고서에 화환 보낼 곳도 있는데, 하나하나 친필로 ○, ×가 표시돼 내려왔다. 당시 첫 회의에서 유승민 의원이 ‘메시지팀은 어떻게 꾸릴까요’ 했더니 ‘정호성 보좌관과 상의하세요’라고 해 깜짝 놀랐다. 조직은 안봉근, 정책은 이재만과 상의하고 보고하라고…. 경악을 했다. 그 정도인데 국회의원 공천을 아래에만 맡겼을지….”

―사실상 문고리 3인방이 상급자가 된 건데, 그럼 회의는 어떻게 한 건가.

“안 했다.” (응?) “안 했다고. 제발 회의 좀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보고서 만드는 걸 싫어했다. 결국 유출된다고.” (당시에는 최순실이 없었나.) “최순실은 몰랐고, 사실 우리는 최순실 남편인 정윤회가 비선 실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했던 게 내가 일정 담당이다 보니 박 전 대통령 쪽에서 예를 들면 며칟날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는 아무 일정도 잡지 말라고 지시가 왔다. 무조건 안 된다고. 경선 때인데…. 어딜 가나 보니 강남에 있는 빌딩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청와대가 낙점했다는데, 원래 당 대표가 데려오는 것 아닌가.

“왜 안 했겠나. 김종인 윤여준 전 의원 등 여러 명을 최고위원회에 올렸는데 전부 거부당했다. 당시 최고위는 합의제라 친박 최고위원들이 모두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김 대표를 찾아와 ‘할매가 이한구 시키라고 한다’고 툭 던지고 가버렸다. 다음 날 최고위에 전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다 들고일어나더라.” (말 잘 듣던 친박 최고위원들이 왜?) “청와대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반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무도 사전에 언질을 못 받은 것도 있고. 그런데 청와대에서 작업을 했는지 며칠 후 태도가 전부 변했다. 당시 청와대는 늘 그런 식이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왼쪽) 뒤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리겠다는 새누리당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하지만 당시 공천은 철저히 청와대와 친박계에 놀아났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왼쪽) 뒤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리겠다는 새누리당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하지만 당시 공천은 철저히 청와대와 친박계에 놀아났다.
―어찌 됐든 최종 임명권자는 당 대표인데 거부할 수도 있지 않았나.

“김 대표는 국민경선제가 숙원이었다.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 등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공관위원장을 안 받고 공관위 구성이 늦어지면 점점 더 시간이 없어지는 거다. 데드라인까지 와서 어쩔 수 없이 국민경선제를 받는 조건으로 타협했다. 그 대신 전횡을 막자는 취지에서 원래 공천심사위인데 이름을 관리만 하라는 뜻으로 공천관리위로 바꿨다.” (정말 관리만 할 거라 믿었단 말인가.) “그래서 견제를 위해 공관위원은 전부 대표 몫으로 달라고 했는데 최고위에서 거부당했다. 옥신각신하다 청와대 반, 대표 반으로 하되 상대방이 반대하는 사람은 빼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올린 사람들은 한 명 빼고 전부 반대하더라. 방송에서 박 전 대통령을 욕했다며…. 기가 막혔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한 명만 빼고 전부 청와대에서 하라고 양보했다. 그게 또 하나의 패착이었다. 뭐가 씌었는지….”

―왜 그렇게 무기력했던 건가.

“김 대표는 공천권도 있고, 상당 기간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였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당 대표가 대통령과 싸우면 망한다. 내 주장에 대해 청와대에서 반감을 가지면 접는 게 맞다’고 하더라.” (그렇게 접다가 더 망한 것 아닌가.) “그렇게 됐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 조정이라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조차 ‘이 사람을 믿고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안 했나.) “최후의 수단으로 공관위를 돕는 당직자들을 모두 철수시킬 계획을 세웠다. 사인만 주면 자료고 뭐고 전부 들고 나오게…. 그런데 결국 대표가 ‘그러면 총선을 어떻게 치르느냐’며 못 하게 하더라.” (정권에 약점 잡힌 게 있어서란 말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겠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뒷다리를 잡힌 게 있었다면 옥새파동 같은 최소한의 저항도 못 했을 거다.”

※조사기관별 차이는 있지만 김 대표는 2015년 12월까지 약 8개월간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였다.

―막판에 부당 공천에 저항해 ‘옥새파동’까지 일으켰는데 단 하루 만에 접었다.

“‘절대로 대표 직인을 찍어줄 수 없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고 부산에 내려갔는데…. 친박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달래려고 내려왔다. 안 올라간다고 하니 대표 유고 상태로 보고 자기들끼리 권한 대행 세워서 결정하겠다고 하더라. 원 원내대표가 돌아간 뒤 측근들과 회의를 했는데, 그들 마음대로 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올라갔다.” (그 정도 각오도 안 했단 말인가?) “하… 이런 표현은 안 좋지만, 정말 쪽팔렸다. 소심의 대마왕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5곳 중 3곳은 무공천으로 남겼으니까….”

※김 대표는 유승민(대구 동을),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을) 지역구와 진박 중의 진박 유영하 변호사가 출마한 서울 송파을 지역구는 직인을 찍지 않아 무공천으로 남겼다.

―이번 총선에서 당시 모습이 어른거린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박 전 대통령 시절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황교안 대표를 둘러싸고 총선과 관련된 중요한 실무를 장악했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때 구성됐던 당무감사위원회는 1년여 만에 황 대표 체제에서 1명만 빼고 다 바뀌었다. 총선기획단도 친황 일색이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여론조사를 하는 여의도연구원장에는 자기 사람을 앉혔다. 이 세 곳이 총선 준비를 하는 곳이다. 더군다나 황 대표를 둘러싼 친박들의 탄핵 찬성파, 탈당파에 대한 적개심은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것보다 더 크다.”

―황 대표가 친박을 제어하기 힘들 거란 말인가.

“한국당 혁신을 막는 게 친박인데 그들이 주도권을 과연 놓을까. 공천에서 쳐내면 가만히 있을까. 황 대표에게 그걸 제어할 힘이 있을지…. 그래서 20대 총선 때 모습이 사람을 달리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황 대표는 실수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어떤?) “공천관리위원장 후보군으로 황 대표가 ‘내 친구 K도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황 대표와 고교 동창인데 여의도에서는 황 대표의 생각과 판단에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을 대표가 언급까지 하니까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이 출판기념회, 당원보고회 등에 모셔서 눈도장 찍으려고 난리도 아니다. 현역 의원, 원외 가릴 것 없이 섭외 1순위다. 대표의 말 한마디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어떻게 파장을 미치는지 모르고 있다.”

―너무 비판적인 것 아닌가.

“주변에서도 그만하라고 하기는 한다. 그런데 지난 총선 과정에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았나. 다시 그 과정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이유는 있었지만 넘어가고 막지 못한 순간들이 모여 결국 막장공천이 됐다.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장성철#황교안#자유한국당#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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