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이란 국민은 위대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4일 14시 00분


정부와 최고지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이란사람들이 분노해 시위하는 모습은 신기하다. 이란 정부는 8일 격추된 우크라이나 민항기의 잔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사실 은폐에 안간힘을 썼다. 이란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이 사흘 만에 “실수로 격추된 사실을 알았을 때 죽고 싶었다”고 자백한 건 심지어 순수해 보인다.

내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어서인가. 집권세력의 거짓말이나 이중적 행각쯤은 내로남불, 가볍게 넘겨버리고 더는 분노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란에선 가장 분노하는 대목이, 체제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비행기 결함에 추락했다고 거짓말한 점이라니 신선하다.

우파든 좌파든, 이슬람이든 무종교이든, 옳은 건 옳은 것이고 거짓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 지당한 사실을 인정하는 이란사람들이 고맙고 감동스럽다. 테헤란에서 반(反)정부 시위 단골 구호인 “미국에 죽음을!” 대신에 “거짓말쟁이에 죽음을!”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외신에 새삼 이란을 다시 보게 됐다.

● 이란혁명은 성직자에게 강탈당한 것

2500년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이란은 1979년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는 진짜 혁명을 했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금 같은 신정(神政) 체제를 원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이란혁명은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공중납치 당했던 것이다.
1979년 테헤란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이란혁명. 위키미디어
1979년 테헤란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이란혁명. 위키미디어


반정부 시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식인과 중산층, 학생과 노조, 민족주의와 좌파 세력도 참여했다. 부패한 팔레비 국왕 축출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1979년 2월 1일 망명지에서 귀국한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는 탄탄한 성직자조직을 통해 이란을 장악하고는 피의 전투 끝에 2월 11일 승리를 선언했다.

3월 말 이슬람 공화국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면서도 어떤 나라로 갈 것인지 이란국민이 몰랐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이슬람 공화국이라고 해도 음주를 강하게 단속하는 나라쯤 될 것으로 여겼다는 1979년 외신도 있다. 투표소는 뻥 뚫린 공개적 장소였고 유권자 명부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국민투표는 사기였던 셈이다.

● 그들이 원한 것은 부와 권력이었다

도덕적 자신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이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 호메이니 세력은 우리의 촛불혁명세력과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 세력과 손잡고 노조 등 좌파세력과 여성운동집단을 몰아낸 다음, 호메이니 독주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서구 앞잡이로 몰아 숙청하는 과정은 공산당 통일전선전술과 흡사하다.
이란혁명의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 위키미디어
이란혁명의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 위키미디어

그렇다면 이슬람 성직자들은 정말 이슬람 율법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정말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 원하는 것은 권력과 부(富)였고, 혁명수비대(또는 정보경찰과 공수처) 같은 폭력을 통해 국민의 머릿속까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면 그들은 정권을 잡지 못했을 거다.

이란 성직자들의 혁명이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는 너무나 많다. 1970년대 중반 국제유가 파동 여파로 대거 해고된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듯, 성직자들은 이슬람 영향력 약화를 위해 팔레비 왕이 종교재단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분배하자 분연히 일어섰다는 분석들이다.

● 부패한 지배세력, 가난해진 이란국민

그 한이 아직도 안 풀렸는지 현재 이란 산업의 70% 이상이 정부 소유 또는 국영으로 운영되면서 지배세력의 배를 불리고 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혁명 주역이자 성직자인 라프산자니 대통령의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는다고 미국 포브스지가 추정했을 정도다.

솔레이마니가 있던 혁명수비대 역시 기업 경영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부와 권세를 누리며 이웃 나라에 혁명을 수출하는 게 업(業)이다. 부패한 지배세력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외면하고 국내외 세력 확장에만 매달린 결과, 천혜의 지정학적 요지에 한반도 7.5배 크기로 자리 잡은 이란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18년 고작 4800달러다.
중동 주요 국가들의 지정학적 위치와 면적.
중동 주요 국가들의 지정학적 위치와 면적.

1970년대까지 이란이 우리보다 잘살았다는 것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애틀란틱카운슬이라는 싱크탱크가 이란과 문화적, 산업적으로, 또는 대미관계에서 비슷한 터키와 한국, 베트남을 비교했는데 195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이란의 60%에도 못 미쳤다. 1980년만 해도 이란의 1인당 소득(2374달러)은 터키(2169달러) 한국(1711달러) 베트남(514달러)보다 많다. 그랬던 우리나라 1인 소득이 2018년엔 이란의 무려 6배다(대한민국 만세!)

● 아무리 불행해도 권력자를 못 바꾼다면

이란에선 신앙을 하늘처럼 받드는 만큼 이란국민이 행복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소득뿐 아니라 자유와 건강, 사회적 지원, 부패 등을 두루 평가해 각국의 행복순위를 매긴 ‘세계행복리포트 2019’에서 이란은 156개국 가운데 117등이다. 이란이 중동 패권의 라이벌로 여기는 사우디아라비아(28위)보다 한참 뒤진다(한국은 54위. 스스로 행복하다고 전 세계에 광고하고 우리 대통령도 본받고 싶다는 부탄은 95위다).

프리덤하우스가 법치와 종교적 자유, 정부의 크기 등으로 매긴 2019년 ‘자유 지수’를 봐도 이란(154위)은 사우디아라비아(149위)와 별 차이 없다(궁금한 독자를 위해, 한국은 27위). 더 가난하고 불행할 뿐이다.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이고 사우디는 수니파 무슬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왕정을 공화국으로 바꾸는 혁명까지 해봤지만, 최고지도자는 바꿀 수 없는 신정체제에서 산다는 것이 숨 막힐 듯하다.
이란 마슈하드의 모스크 광장을 히잡을 쓰고 지나가는 여성들. 사진 출처 middleeasteye.net
이란 마슈하드의 모스크 광장을 히잡을 쓰고 지나가는 여성들. 사진 출처 middleeasteye.net

그에 비하면 우리는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있어 참 다행이다…라고 써놓고 보니 우울하기 그지없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우습게 선거제도가 바뀌고, ‘윤석열 검찰’의 손발이 잘려나가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는 물론 선거관리위원회까지 집권세력에 장악돼 앞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2016년 촛불시위가 그들만의 이념을 공유하는 혁명세력에 공중납치 됐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겠다.

● 北 김정은 “핵 포기 없다” 다짐했을 것

더구나 우리는 핵을 움켜쥔 북한 김정은을 머리 위에 모셔놓고 사는 처지다. 김정은 입장에선 미국이 이란에 핵무기가 없어 솔레이마니를 드론 공격했다며, 절대 핵 포기 못 한다고 재차 다짐했을 것이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미사일 공격해도 미국서 대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북은 오산이나 평택 군산의 미군기지를 폭격해도 미국은 물론 한국도 꼼짝 못 할 거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남쪽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을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니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행인지 불행인지 2020년의 국제정세는 민족주의의 귀환, 세계주의의 후퇴, 힘과 국가이익을 강조하는 지정학의 귀환이 예상된다. 국내정치에선 권위주의의 증가, 그리고 국내정치 이해관계가 국가전략을 압도하는 외교가 두드러질 것으로 아산정책연구원은 내다봤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한심한 짓을 하리라는 전망이다.

● ‘중동의 중국’ 이란과 중국, 그리고 한국

이란은 ‘중동의 중국’이다. 아태지역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미국의 축출을 꾀하는 것처럼, 이란도 중동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이 떠나기를 원한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한 미국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미국이 동맹국을 위해 원유 수송길을 지켜주는 경찰 역할에서 손을 떼면 가장 멀리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한국은 ‘참혹한’ 꼴을 당할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를 떠나도 마찬가지다. 이란도 2500년 전 페르시아제국의 영광을 못 잊고 주변국에 테러를 수출해 이슬람 맹주를 노리는 판에, 중화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 옆에서 한국이 온전할 리 없다. 현재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본다면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는 건 고려대상도 될 수 없다고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의 피터 자이한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친중반미반일 세력이 득세한 ‘국내적 문제’로 인해 국민이 불행해지는 길로 갈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리 신을 받드는 정권이라 해도, 40년간 세계 최강국 미국에 맞서 제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나라를 잘 봐주긴 어렵다. 그나마 이란에는 정부와 최고지도자의 거짓말을 용납 못 하는 국민이 있어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분노할 일은 내로남불이라며 비웃을 게 아니라 분노를 해야 한다. 이란국민 만세.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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