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한국을 중심으로 2120년 세계 전망에 대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글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어 영광이다. 나는 1973년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정착했다. 지금은 4개의 공립 연구중심 대학으로 구성된 미주리대의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간 나는 한국이 경제, 교육, 문화 측면에서 이룬 진보를 꾸준히 지켜봤다. 내가 떠나 올 당시만 해도 가난했던 이 나라가 이렇게 대단하게 발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973년 당시에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그 누구도 삼성, 현대, 럭키금성(지금의 LG)이 글로벌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미래를 전망하고 2120년 한국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자 한다. 먼저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 첫째, 나는 1973년 한국을 떠나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고, 한국의 발전 과정을 외부 관찰자의 시각으로만 지켜봐 왔다. 둘째, 예측은 위험한 작업이다. 미래학자 아서 C 클라크의 말을 빌리자면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좌절을 안겨주는 위험한 일”이다.
예측 역량의 부족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래서 전문가들의 2100년 예측을 대신 참고하려고 한다. 세계 최고 과학자 300명의 2100년 전망을 토대로 한 기사가 얼마 전 뉴욕포스트에 실렸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예측을 내놓았다. ①콘택트렌즈를 통해 인터넷을 볼 수 있다. ②컴퓨터, 휴대전화, 시계 등이 모두 사라진다. ③완전한 자율주행차가 구현되고 자동차가 하늘을 날 수 있다. ④의사들이 ‘예비 장기’를 만들어낸다. ⑤‘낡은 장기’를 새 장기로 교체함으로써 인간 수명을 무한정 늘릴 수 있다. ⑥분자 형태의 ‘스마트 폭탄’이 암세포와 기타 질병을 퇴치한다. ⑦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고 태양계를 관광한다.
와! 이런 예측이 실현된 미래 세상은 기막히게 멋질 것이다. 하지만 예비 장기기관을 만드는 일이 사회·문화·윤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수명 연장 기술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간극이 생기지는 않을까? 휴머니즘의 가치를 아는 사회를 구현하려면 이런 질문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제 한국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나는 한국이 앞으로 ‘양지바른 곳(a place in the sun)’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2120년이 되기 전에 남북한이 통일되고 한국인들에게 드리워진 파시즘과 공포의 긴 그림자가 걷히리라고 믿는다. 나는 한국이 지금의 경제 강국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4, 5차 산업혁명과 함께 앞으로 등장하는 모든 업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예측은 지금 한국인들이 맞닥뜨린 구조적 도전 과제들을 해결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주택 가용성, 시민 참여, 교육, 개인 안전 측면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격차, 개인적 웰빙, 환경의 질,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한국의 경제적 양극화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보다 5배 이상 높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한국의 준비 수준이 세계 25위에 불과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전체 조사대상 한국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4차 산업혁명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중국 제조 2025’, 일본의 ‘슈퍼 스마트 사회’, 독일의 ‘산업 4.0’ 등 여러 국가가 이미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제조업 혁신 3.0’ 전략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이대로 충분한가? 한국이 과연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유엔은 현재 5100만 명인 한국의 인구가 2100년이 되면 300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다. 25∼29세 청년층의 혼인율이 1970년 90%에서 2015년 23%로 급감했다. 이 같은 추세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 현상에서 기인한다. 그 결과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1명으로 세계 평균 출산율인 2.5명을 훨씬 밑돌게 됐다. 출산율 꼴찌 국가이며 1.2명인 일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개인적 목표와 직업적 목표를 희생하고 가족에 헌신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게다가 한국 남성들은 가사를 적극 책임지지 않는다. 가까스로 노동인구에 편입된 여성이라 해도 고임금 일자리 기회 부족, 임금 격차와 같은 난관에 부딪힌다. 최근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앙정부 장관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9.1%로 헝가리와 터키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여성의 노동인구 비율이 60%에 이르지만 이들의 일자리는 대개 저임금 비정규직에 몰려 있다. 게다가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6%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1세기 말이 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92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OECD에 따르면 2015년 65세 이상 한국인이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했다. 그런데 2050년이 되면 이 비율이 70%를 넘어서게 된다! 이 수치는 여러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빈곤 문제가 특히 걱정된다. 2015년 한국의 평균 빈곤율은 약 13%로 OECD 평균인 12%를 조금 웃돌았다. 그런데 연령별로 나눠 들여다보면 심각성이 드러난다. 18∼50세 인구집단의 빈곤율은 OECD 평균보다 낮다. 하지만 51∼65세와 65세 이상 인구집단의 빈곤율은 더 높다. 실제로 65세 이상 한국인의 빈곤율은 무려 44%에 이르러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OECD는 밝히고 있다. 일본은 이 수치가 18%다.
이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가 불러온 급격한 제도 변화 탓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결속 약화와 가족의 역할 감소가 더 크게 기인했다. 예를 들면 1984년과 1998년 사이에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일하는 성인 자녀의 비율이 2배 증가해 47%에 이르렀다. 이런 현실에 연금수령자에 대한 지원 부족과 기대수명 증가까지 더해지는 상황이어서 한국은 은퇴 연령 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일궈낸 발전은 그야말로 고무적이다. 한국은 수학, 과학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에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그런데 이렇게 찬사를 받는 한국 교육제도의 근본에 금이 가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표준화된 시험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암기식 교육과 경쟁에만 집중할 뿐 창의력과 혁신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미래에 창업을 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지, 혹은 본인이 창업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18∼34세 한국인들은 다른 OECD 회원국의 청년들에 비해 훨씬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학원 등록비는 가계 월소득의 30%에 해당할 정도로 높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사교육에 들이는 시간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이 하루 16시간 동안 공부를 하는 것이 그리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다. 극심한 압박감, 수면 부족, 또래와의 사회적 관계 부족은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하는 자살률의 원인이다. 9∼24세 한국 어린이, 청년들의 주요 사망 요인이 자살이다. 대체 어디에서 탐구하고 고찰하고 숙고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한국이 교육 체계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창의성을 증진하는 동시에 대입 전형의 불공정과 비리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과 한국인들이 2120년에 건승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자랑스러운 나라가 새로운 기회를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양지바른 곳’에 안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 징후에 대응하고 커다란 도전 과제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