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분에 나를 찾았다며 쪽지를 보냈다.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부터 알고 지낸 선배였고 연기를 그만둔 뒤 취직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이후,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나 귀농한 지 10년 넘었어. 고향에서 사과농사 하고, 농가주택 개조해서 펜션도 해. 놀러와!” “어딘데요? 저 놀러갈게요!” 나는 당장 숙소를 예약했다. 미리 알아보면 신비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아무 정보 없이, 주소만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선배를 만나러 갔다.
서울에서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충청도 시골 마을이었고 주소지에는 작은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형! 저 주소 찍고 왔는데 커피숍인데요?” “안으로 들어와.” 들어가니 화목난로 위에 고구마가 놓여 있고 주전자는 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대로네!” 낯익은 중저음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선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엊그제 만난 사람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숙소는 오래된 한옥이었고 장작을 때는 구들장이 있는 방이었다. “불 많이 넣을 테니 허리랑 등 지지고 가.” 누렇게 변색된 종이장판, 문창호지로 된 방문, 그리고 오래된 장롱. 방에 잠깐 앉아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됐다. 나는 동네 구경도 하고 싶었다. “형, 동네 구경하고 저녁은 개울에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 좀 끓여주세요.” “앞에 개울이 있긴 있는데 겨울에는 물고기가 잡힐지 모르겠다. 여름에는 메기도 잡히는데.” 선배와 나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바지를 입고 양동이를 들고 나갔다. 개울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선배와 나는 얼음을 깨고 들어가 열심히 족대(생선을 잡는 도구)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상하다, 여름에는 많이 잡히는데.” “형 족대질 안 해봤죠? 좀 더 깊은 데 없어요?” “저 밑에 내려가면 있어.”
우리는 장소를 옮겼고 이번에는 내가 족대를 잡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천렵 다니는 걸 좋아해서 족대질을 잘했고 물고기가 많이 나오는 곳도 알고 있었다. 역시나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 꺽지, 뚝지, 피라미까지 제법 많이 잡았다. 둘이 먹을 정도만 양동이에 담아 숙소로 향했다. “형 솔직히 시골 사람 아니죠?” “왜?” “시골 사람이 왜 저보다 족대질을 못해요?” “나 다섯 살 때까지 여기 살다가 서울로 이사 갔잖아. 강남에서 30년 넘게 살다가 왔으니까 못하지. 하하하!”
어느덧 해는 지고 있었고 쌀쌀하긴 했지만 마당에 모닥불 피워 삼겹살도 굽고 잡어 매운탕에 소주 한잔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과농사랑 또 뭐해요?” “이것저것 하지. 비트, 토마토, 저 앞에는 다 매실나무고.” “농사짓는 거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 풀과의 전쟁이고. 그래도 잡초만 잘 골라내도 반타작은 하더라고.” “도시 생각 안 나요? 강남 생각 날 거 같은데.” “가봐야 똑같지 뭐. 사람한테 상처받는 것보다 여기가 나아. 얘들은 상처는 안 주거든.” 그날 아궁이에 장작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뜨거워 한숨도 못 잤다. 역시 그는 시골 사람이 아니었다. 농사처럼 인생도 잡초만 잘 골라내면 반은 성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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