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돌려막기와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 연루 의혹, 펀드 환매 중단,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 수사, 핵심 임원의 잠적까지….
‘한국형 헤지펀드 1위’의 빛나는 타이틀을 자랑하던 라임자산운용(라임)이 한순간에 몰락한 과정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다. 금융감독원 중간 조사 결과와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결과가 다음 달 발표되고,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범죄가 추가로 나올 수도 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라임 임직원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사태를 방관하며 뒷북 대응을 한 금융당국, 불완전 판매 의혹을 받고 있는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도 간접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가들은 라임 사태를 사모펀드 시장이 성장하면서 예상됐던 각종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사건으로 본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언제든 라임 드라마의 후속편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 리스크 무시한 라임의 무분별한 투자
2015년 금융당국은 헤지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자기자본 요건을 6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낮추고 인가제를 등록제로 변경하는 등 시장 진입 문턱을 낮췄다. 2012년 투자자문사로 출발한 라임은 이 시기에 맞춰 2015년 12월 헤지펀드 전문 운용사로 변신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라임이 자산운용사로 전환했을 때 펀드 설정액은 206억 원이었다. 이후 자산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라임은 비상장기업,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투자(주식과 채권의 특성을 모두 가진 금융상품)와 대체투자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이종필 전 부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다. 그는 라임이 헤지펀드 전문 운용사로 출범할 때 합류한 인물로 대신증권,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를 거쳤다. 원종준 대표가 롱숏 전략 등 전통적인 주식 투자에 관여했다면, 이 전 부사장은 메자닌, 사모사채, 무역금융 등 현재 문제가 된 펀드 대부분을 담당했다.
이 전 부사장은 2018년 정부가 ‘자본시장 혁신을 위한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코스닥 벤처펀드가 판매되면서 메자닌 투자 규모를 더욱 늘린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자산의 15% 이상을 CB, BW 등을 포함한 벤처기업의 신규 발행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이에 시장에 메자닌이 쏟아져 나오자 라임은 이를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메자닌은 주가가 오르는 시기에는 주식으로 전환해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상승장에서 효과적인 투자상품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당시 코스닥시장에 메자닌이 과도하게 풀려 향후 주가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라임은 수익률을 위해 위험한 투자를 계속했다. 심지어 투자 대상에 한계기업이 끼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라임의 준법감시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고음은 커져갔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손놓은 금감원, 불완전 판매 가능성 무시한 판매사
2016년 말 2446억 원이던 라임의 펀드 설정액은 2018년 말 3조6000억 원대로 폭증한다. 현재 헤지펀드 업계 2위인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경우 2016년 말 5890억 원에서 지난해 말 1조3240억 원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라임의 성장이 얼마나 가팔랐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원 대표와 이 전 부사장은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금융사와 인맥을 동원해 펀드 판매 금액을 크게 끌어올린다.
라임에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었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제대로 관리 감독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당국은 2018년 라임이 공모펀드 운용사 전환을 신청했을 때 라임이 운용 중인 펀드들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7월 일부 투자자가 라임을 상대로 수익률 조작과 부실기업 투자 등을 문제 삼아 고발에 나서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10월 라임은 메자닌, 사모사채 등에 투자한 사모펀드에 대해 환매 연기를 결정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8월부터 10월 사이 라임을 상대로 검사를 벌이고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동성 리스크와 관련된 부분에서 라임이 실수했다고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라임의 사기 가능성을 당시만 해도 낮게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금감원이 손놓은 사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이 전 부사장은 코스닥시장 상장사 리드의 800억 원대 횡령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발견되자 지난해 11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상당한 규모의 도피 자금을 챙겨 잠적했다. 이어 지난해 말 라임의 무역금융 펀드를 운용하던 더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IIG)가 ‘폰지 사기’ 혐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자산을 동결당했다. 라임의 펀드 환매 중단 금액은 현재 약 1조6700억 원까지 불어났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라임에서 펀드 판매 요청이 들어왔었는데, 고객들은 물론 직원들도 펀드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추천 금융상품에 넣지 않았다”고 했다. 고난도 상품이었던 만큼 불완전 판매의 불씨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특정 프라이빗뱅커(PB)가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690억 원어치를 집중적으로 팔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금융사들도 자체 점검을 통해 복잡한 금융상품이 과도하게 팔리는 현상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은 이달 중순 라임과 판매사 등을 상대로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환매 중단 사유가 발생했음에도 펀드를 계속 판매했고, 문제없이 상환될 것처럼 설명했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사들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은 낮으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한다. 증권사들은 라임이 펀드 수익률을 부풀리고 유동성 문제를 알고도 공개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며 법적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 금융시장 뒤흔든 라임 사태 다시는 없어야
라임 사태는 자본시장의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자산운용사에 대출해줬던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자금을 급히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업계 3위권인 알펜루트자산운용도 유동성 문제를 겪으며 최근 1108억 원 규모 펀드에 대해 환매 연기를 결정했다. 한동안 자금을 끌어모으던 사모펀드도 지난해 4분기부터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라임 사태 등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고 이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라임 사태는 운용사의 무리한 투자와 불법, 당국의 뒤늦은 대응, 판매사들의 안이함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투자자들도 혹시 수익에만 현혹돼 위험성은 도외시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라임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라임 사태를 통해 수익률에 눈먼 운용사들의 불법 행위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으며 금융당국의 감독체계가 느슨하다는 것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헤지펀드 등에 쓰이는 투자 기법은 빠르고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이를 이해할 만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일단 금감원은 고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고난도 금융상품에 대한 판매 절차 준수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당국이 사고를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는 손쉬운 해결책을 들고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미국, 홍콩처럼 금융 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면서도 시장을 활력 있고 투명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임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고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고 시장을 위축시키는 것은 1차원적인 대책이다. 이번 기회에 당국과 시장 관계자, 투자자 모두 자본시장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들 묘수를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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