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을 넘어 공존을 향해[동아 시론/함인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1일 03시 00분


기업마다 ‘90년대生 열공’ 화두…변화 빠른 한국, 세대 갈등도 커
美학자 ‘인류의 핵심과제’로 지목…반목-경계보단 존중과 이해 필요
세대통합 공동체 등 정책 고민해야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대기업에서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거꾸로 신세대는 기성세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워드 클라우드(단어를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것)를 실시했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신세대 이미지로는 ‘개인주의’ ‘자유분방’ ‘열정’ ‘역량 부족’ 등이 큰 글씨로 나타났고, 신세대가 보는 기성세대 이미지로는 압도적이었던 ‘꼰대’의 뒤를 이어 ‘야근’ ‘조직 충성’ ‘리더십’ ‘변화 저항’ 등이 등장했다. 세대 간극의 현주소가 드러난 셈이다.

지난 5년여 동안 국내외를 막론하고 199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경영학 및 조직 심리학 분야를 중심으로 이들의 특성을 주제로 한 연구가 쏟아졌다. 미국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밀레니얼의 전형적 특징으로, 자신을 향한 높은 기대치,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관심과 몰입, 끊임없는 학습, 공정한 리더십에 대한 높은 선호도 등에 더하여, 출근 첫날부터 자신이 주인공이길 원하며, 강한 목표 지향성하에 성공에 대한 강박을 보인다는 점 등을 열거했다.

변화가 빠른 사회일수록 세대별 경험치의 차이로 인해 세대 갭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압축적이고 농축적인 변화를 경험해온 한국은 그 어떤 사회보다 첨예한 세대 갈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 ‘소통이 비교적 잘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이, 가족(87%)이나 직장 동료(73%)에 비해 세대(38%)는 현저히 낮았다.

일찍이 미국의 인구학자 토레스 길은 향후 인류가 직면하게 될 핵심적 과제의 하나로 다세대간(多世代間) 공존을 지목했다. 이제 인류는 증조부모 세대까지 생존해 있는 4세대 사회를 넘어 고조부모 세대와 함께 살아가는 5세대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만큼, 세대 갈등으로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기보다는 세대 공존의 지혜를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고민해야 하리라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과도기에서 세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출발로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필수다. 자신이 속한 세대의 경험과 가치를 기준으로 다른 세대를 왜곡하고 평가절하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단, 세대 간 인정과 존중은 립 서비스 수준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획일적 기준을 강요한다면 다양성은 혼란으로 인식되고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대 간 인정과 존중을 위해서는 나와 다른 세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1990년대생이 밀려오고 있다는 각성에서 출발해 이들의 독특한 세대정서와 그에 따른 태도 및 행동양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왜 우리만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지? 신세대도 기성세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기성세대 입장은 물론 유효하다.

세대 간 상호이해를 위해서는 상대 세대를 향한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나 부정적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일례로 신세대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요 계산적인 데다 오프라인 소통을 불편해하고 온라인 소통을 선호하리라는 선입견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신세대 입장에서는 평생고용이 사라진 시대 자신의 시장 가치를 높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신세대도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이루어지면 허드렛일도 마다 않고 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 오프라인 소통 선호도가 75%로 온라인 소통 25%보다 높았다는 사실 등이 다양한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조직 내 세대별 업무태도 및 업무능력을 비교해본 자료에서도 직장 충성도, 리더십, 업무지식, 책임감 면에서는 기성세대가 신세대보다 능력과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신세대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세대 공존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의 뒷받침이 요구된다. 독일과 일본에서 세대분절적 실버타운 대신 세대통합적 노후 공동체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좋은 예이다. 낡은 가치와 태도를 탈(脫)하고 새로운 세대공존의 규범과 행동양식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다는 소식 또한 들려오고 있다. 세대는 갈등 및 충돌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과 공존의 상대라는 인식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길 희망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90년대생#세대 갈등#기성세대#신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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