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무증상 전염’[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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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병원체다. 미생물인 세균은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같은 ‘스타 항생제’가 있지만 바이러스는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 바이러스는 인체의 세포 속으로 쏙 들어가 증식해 세포를 죽이지 않는 한 약을 쓰기도 어렵다. 에이즈와 헤르페스가 쉽게 제압되지 않고 인플루엔자, 아시아독감, 신종플루 등이 맹위를 떨치는 것은 원인 바이러스가 변종이 많아 백신 개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염성 질병은 통상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야 타인에게 전염을 시킨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었던 사스와 메르스의 경우 치사율이 매우 높지만 증상 없는 상태에서 남에게 전염시킨 사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한 폐렴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못된 특징’까지 지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한 폐렴 바이러스는 사스 및 메르스 바이러스와 유전자 염기서열 유사성이 각각 85%와 50%에 달하는데 유독 ‘무증상 전염’이라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공포를 더하는 것이다.

▷독일을 방문했던 중국인 여성은 귀국할 때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독일 체류 중 접촉한 3명의 독일인이 2차 감염자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우한에 다녀온 선전의 10세 소년은 자신은 별다른 증상이 없으면서 가족 4명에게 전염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확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무증상 감염자’를 ‘걸어 다니는 폐렴(Walking Pneumonia)’이라고 불렀다. 바이러스 가운데 무증상 전염이 이뤄지는 것은 홍역과 인플루엔자 정도였는데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주기적으로 바이러스의 공습을 받는 인류가 새로운 ‘악마’적 속성에 직면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사스보다 더 많은 감염자를 내며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우한 폐렴의 ‘무증상 전염’ 가능성은 방역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검역 대상을 찾을 수 없어 전선(戰線)이 더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우한 폐렴 바이러스는 1명이 감염시키는 인원수인 재생산지수가 1.4∼2.5로 사스(4.0)보다는 작지만 메르스(0.4∼0.9)보다는 매우 높다. 우한 폐렴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물방울인 비말(飛沫)을 통해 전파된다. 무증상 감염자의 경우 기침이나 재채기 같은 증상이 없으므로 전파 가능성이 다소 낮아지기는 하지만 위험성은 상존한다. ‘무증상 전염’의 정체를 파악해 ‘무증상 슈퍼 전파자’에 의한 ‘팬데믹(pandemic·대규모 전염)’의 출현을 막아야 하는 중대한 고비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우한 폐렴#무증상 전염#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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