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못 받았다고? 설마 아직도 드골 공항에 묶여 있는 건 아니겠지? 구운 지 벌써 1주일이 지났는데 껍질이 다 말라버리겠다. 이번엔 나랑 같이 너의 누이 실비가 함께 만들었다. 네 엄마는 정말 크게 만들었는데 네 누이 것은 작다….” 시아버님이 매일 전화해서 도착 여부를 묻는 소포 안에는 ‘오게이’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오게이는 알자스 지방에서만 굽는 빵으로 특히 겨울이면 집집마다 이 빵을 굽는다. 한 번 구울 때 듬뿍 구워서 겨울 내내 팔팔 끓인 뱅쇼와 함께 먹는다. 오게이 빵을 먹지 못하고 겨울을 난다면 알자스 사람들은 스스로를 외로운 인간이라고 측은하게 생각한다.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몇날 며칠 이 빵을 구웠다. 밀가루 반죽이 푹푹 소리를 내면서 부풀어 오르는 동안 시아버지는 망치로 호두와 아몬드 껍질을 깨고 무화과와 청포도, 적포도, 살구, 자두와 같은 온갖 종류의 말린 과일들을 작게 썰었다. 이 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죽에 야생열매 독주인 슈납스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말린 과일들에도 슈납스를 듬뿍 뿌려 하룻밤 재워 놓아야 한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시어머니는 반죽에 넣으며 조금씩 홀짝거린 술로 볼이 빨개져서 빵을 만드는 내내 깔깔깔 웃어댔다.
밤새 체리 슈납스에 담가둔 말린 과일들은 다음 날이면 촉촉하게 젖어 말랑말랑해진다. 빵을 오븐에 넣는 날에는 두 시누이가 왔다. “엄마, 이제 시작할까요?” 시누이들은 잘 부푼 반죽에 코를 킁킁대고 슈납스에 젖은 과일들을 집어먹는다. 이 빵은 혼자서는 구울 수 없다. 적어도 여섯 개 정도의 손이 필요하다. 시어머니가 반죽을 넓게 펴면 두 딸이 그 위에 과일들과 호두, 아몬드들을 듬뿍 뿌린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려 조심스럽게 반죽을 말기 시작한다. “엄마는 말린 과일을 너무 많이 넣어.” “그러니까 자꾸 옆구리가 터지지.” 이윽고 하나가 완성되어 오븐에 들어간다. 오븐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한의 길이다. “이제부터는 오븐이 알아서 해주겠지.” 이렇게 해서 하루 종일 식구 수대로 만들어 모두에게 나눠 주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 딸이 대신해서 그 일을 이어갔다. 어머니와 달리 딸은 혼자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에 옆구리가 터지지 않을 만큼 적당한 양의 과일을 넣어서 만들었다. 이번 겨울에도 시아버지는 망치로 호두를 깨고 마른 과일을 잘라 오게이를 만들었다. 식구 수대로 만들었고 우리 몫은 먼 여행을 해서 열흘 만에 도착했다.
“하나는 너희들 식구, 또 하나는 끔쑤 씨 거다.” ‘끔쑤 씨’는 친정어머니 금순 씨다. 시아버님 레몽 씨와 어머니 금순 씨는 87세로 나이가 같다. 오게이 빵을 친정어머니에게 갖다드렸더니 당장 시아버님에게 전화를 건다. 어머니는 전화기에 대고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레몽 메르시! 레몽 메르시!” 아버님 또한 똑같은 소리로 대답한다. “끔쑤우! 끔쑤우!” 서로 이름만 열두 번쯤 부르다 전화를 끊었지만 어머니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눈 것처럼 만족해한다. “아이고, 내 인생의 동기동창 레몽 씨, 마누라도 없고 참 안됐다. 이제는 빵도 혼자서 굽는구나. 오래 살아야 할낀데, 마누라가 없어서 우짜노….”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운 어머니는 자신보다 이제 막 여자를 잃은 늙은 남자를 더 불쌍하게 생각한다.
오게이를 잘라 보니 겉은 좀 말랐지만 안은 아직도 촉촉하다. 코에 대 보니 쌉싸름한 체리 슈납스 냄새가 은은하게 난다. 한입 베어 먹으니 말린 무화과 씨앗이 아싹하는 소리를 내면서 씹힌다. 볼이 빨개져서 깔깔깔 웃던 시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막내아들 레돔을 끔찍이 사랑했던 여인, 그런데 아들은 오게이를 먹으며 ‘누나가 엄마보다 빵을 더 잘 굽는 것 같아’ 하고 말한다. 이래서 아들은 다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먼 어딘가에서 아들을 보며 그리움의 미소를 지을 시어머니,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어머님, 이제부터 제가 오게이를 구워 볼게요. 어머님처럼 옆구리가 푹푹 터지도록 크게 구울게요!”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충주에서사과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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