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이익만 따지는 헤지펀드 단기투자가 美기업 망가뜨려”[파워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김수형 美헤지펀드 ‘스탠더드제너럴’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

《미국 뉴욕의 헤지펀드 스탠더드제너럴의 김수형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45)는 월가와 미 방송계가 모두 주목하는 인물이다. 그는 2013년 파산한 방송국 ‘영브로드캐스팅’을 인수한 뒤 이 회사를 미국에서 8번째 큰 방송그룹으로 키웠다. 이후 회사를 매각해 엄청난 돈도 벌었다. 최근에는 대형 미디어그룹 테그나(TEGNA)의 경영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스탠더드제너럴의 자산 규모는 약 14억 달러(약 1조6700억 원). 유년 시절 13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소년이 굴지의 펀드매니저로 성장한 것이다.

김 창업자는 삼성, 현대자동차 등의 지분을 사들인 후 과도한 경영 간섭으로 논란을 야기한 미 행동주의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운영진과도 가깝다. 하지만 그들의 투자 철학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엘리엇이 한국에서 한 일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8일(현지 시간)과 14일 뉴욕 센트럴파크 옆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김수형 스탠더드제너럴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14일(현지 시간) 자신이 운영하는 스탠더드제너럴 미국 뉴욕 사무실 앞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창업자는 14억 달러(약 1조67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지만 평소 소탈한 차림을 즐긴다. 그가 입고 있는 상의는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단체 캐리 인스티튜트의 조끼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김수형 스탠더드제너럴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14일(현지 시간) 자신이 운영하는 스탠더드제너럴 미국 뉴욕 사무실 앞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창업자는 14억 달러(약 1조67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지만 평소 소탈한 차림을 즐긴다. 그가 입고 있는 상의는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단체 캐리 인스티튜트의 조끼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엘리엇 사태 후 한국에서는 미국계 헤지펀드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미국의 많은 헤지펀드들이 단기 투자에만 집중한다. 최근 미 기업은 분기별로, 자산관리자들은 월간 단위로 움직이는 추세다. 한국처럼 3년, 5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생각하지 않는다. 주당 30달러에 사서 내일 35달러를 받을 수 있으면 팔아버린다. 설사 미래에 50달러를 벌 수 있다 해도 말이다. 한국인들이 그런 미국 회사를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그들은 1달러라도 더 벌 수 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얼마나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단기적 시각이 미국 기업들을 망가뜨렸다. 진정한 가치는 ‘장기투자 곱하기 장기투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매년 3%를 30년간 번다고 생각해보라. 엄청난 돈이다. 한 해 15% 벌었다가 이듬해 5% 손해를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장기적 관점에서 다수 지분을 보유하고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하이브리드 버전’의 투자자다.”

―엘리엇을 왜 지지하지 않나.

“엘리엇에 친구들이 많다. 가장 친한 친구도 투자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 건 한국 문화를 잘 모르면서 무조건 적대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법적 위협을 가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할 때보다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좋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파트너다.”

블룸버그통신은 “스탠더드제너럴은 전형적 행동주의 투자자는 아니다. 대규모 지분을 인수하고 이사회에 참여하고 직접 경영을 한다”고 전했다. 부도가 나거나 파산한 기업의 지분이나 채권을 인수하고 기업 경영에 참여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투자전략을 구사한다는 의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월가가 한국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

“한국은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이 많다. 장기적 사고를 하는 점은 인정하지만 주주에 대한 생각을 덜 한다는 인식이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 기업처럼 창업자와 그 후손이 5% 지분으로 100%의 표를 통제하는 일은 드물다. 이를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권한을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만 쓴다면 나쁘다고 본다. 주주나 더 좋은 일을 위해 쓴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성장하려면….

“주주 친화적 사고,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좀 더 이뤄낸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줄어들 것이다. 무조건 미국처럼 하라는 건 아니다. 자본에는 선악이 없다. 엘리엇이 한국에서 어리석은 일을 했지만 그들의 주장에 귀담아들을 부분도 있다. 국제 자본을 끌어들이려면 엘리엇에 ‘당신들이 100% 틀리지는 않았다. 60%는 틀리고, 40%는 옳다. 이 때문에 우리도 40%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2007년 한국 맥주회사 투자를 검토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보험사, 제조업체 등 한국 기업 5, 6곳에 대한 투자를 검토했지만 자신의 투자전략이 한국에서 통하리라는 확신이 없어서 관심을 접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시대에 왜 전통 미디어에 투자하나.

“전통 미디어가 쇠락하고 있지만 전망은 어둡지 않다. 미국의 지역 방송사들을 하나로 묶으면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서로 힘을 모아 경쟁력을 유지하고 트렌드를 바꾸고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방송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민주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 방송은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서울에서 의사였던 그의 부친은 1977년 미국 유학을 왔다가 눌러앉았다. 1980년 그와 어머니, 누나가 뉴욕으로 건너왔지만 1982년 부친의 체류 비자가 만료된 후 가족 전체가 불법체류자가 됐다. 1995년 영주권을 취득할 때까지 13년 동안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좌절감이 컸겠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의사 가족’이었다. 난 지금도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내 삶에 이미 충분한 드라마가 있다. 난 늘 한국과 미국 중간 어딘가에 있는 ‘회색인’ ‘이방인’이었다. ‘추방당하지 않으려면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다. 여느 미국 아이들처럼 파티 한 번 편하게 즐겨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는 늘 결과에 대한 걱정이 따라다녔다. 덕분에 분노, 좌절, 슬픔이 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다.”

공부를 잘했던 그는 뉴욕의 우수한 공립 특수목적고로 평가받는 스타이비선트고교에 합격했다. 그는 “고교 때는 펜싱팀 주장, 대학에서는 조정 선수로 활동하며 분노를 스포츠로 표출했다”며 “펜싱 장비를 살 돈이 없어 빌려서 운동을 했다. 다리가 짧아 조정 선수로 활동하기에 불리했지만 의지력으로 버텼다”고 했다. 그는 “프린스턴대는 훗날 내가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고맙게도 계속 공부할 수 있게 기회를 줬다”고 덧붙였다.

―왜 금융계로 진출했나.

“돈을 벌어야 했다. 세 살 터울 누나는 컬럼비아대, 나는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당시 부모님이 집을 팔아 우리 둘의 학비를 댔다. 이후 먼저 대학을 졸업한 누나가 내 학비를 책임졌다. 당시 누나는 1주일에 90시간씩 법률회사에서 변호사 보조로 일했다. 가족에게 진 빚을 갚아야 했다. 그래서 로스쿨에 합격했지만 진학하지 않았다.”

그는 2014년 3곳이나 있었던 스타이비선트 동창회를 하나로 만들어 통합 동창회장에 올랐다. 2018년 시험을 통한 특목고 입시를 폐지하려는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의 계획에 맞서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 더블라지오 시장은 ‘스타이비선트, 브루클린텍, 브롱크스과학고 등 주요 특목고에 아시아계 학생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입시안 변경을 추진했다. 핵심 지지 기반인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를 위한 정책이란 비판이 거셌고 김 창업자를 비롯한 동문들도 반대에 나섰다. 뉴욕시는 지난해 이 계획을 폐지했다.

―특목고 입시 논란 때 주목을 받았다.

“어떤 식으로든 주목을 받으려는 정치인, 시험을 싫어하는 교육당국이 벌인 일이다. 뉴욕시가 추진하는 안이 이뤄졌다면 뉴욕 특목고의 한국계 학생이 현재보다 75% 감소할 수도 있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막아야 했다. 모든 입시에 필기시험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시험이 없는 세상도 믿지 않는다. 시험 없이 어떻게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나. 스타이비선트고가 필기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았다면 난 그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특목고 논란이 심하다.

“모든 아이들은 똑같지 않다. 교육은 개별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어떤 학생이 앞서갈 수 있는데도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불공정하다. ‘서울대’가 문제라면 다양한 그룹의 뛰어난 사람들을 위한 더 많은 ‘서울대’를 만들면 된다. 특목고를 없앨 게 아니라 정원을 두 배로 늘리면 더 다양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다.”

―한인 청년들에게 해줄 말은….

“늘 마음에 분노가 가득 차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분노와 좌절감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오게 했다. 한국 젊은이들도 부정적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삼아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늘 ‘너에게 더 많은 걸 해줬어야 했는데’라고 하신다. 난 ‘더 중요한 것을 주셨다’고 답한다. 부모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주셨다면 게을러졌을 것이다. 부족한 것이 오히려 날 풍족하게 만들었다.”

김 창업자는 한국어를 못 한다. “내 안에 ‘한국성(Koreanness)’이 별로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의 분노를 얘기할 때 또렷한 한국어로 ‘한(恨)’이란 단어를 썼다. 그는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한 경험이 거의 없다. 졸업식처럼 특별한 날엔 아버지가 코리아타운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사주셨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여전히 자장면을 즐겨 먹는다고도 했다. 김 창업자는 아직 한국식 이름 ‘수 김’을 쓴다. 불법체류자로 지낼 당시 신분이 없어 영어 이름을 만들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 김수형 스탠더드제너럴 창업자

△1975년 서울 출생
△1980년 미국 이민
△1997년 프린스턴대 졸업(우드로윌슨스쿨)
△1997∼1999년 뱅커스트러스트 자산관리그룹 애널리스트
△1999∼2005년 오크지프 캐피털매니지먼트 파트너
△2005∼2007년 사이러스캐피털 파트너스 공동 창업자
△2007∼현재 스탠더드제너럴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
△현재 트윈리버홀딩스 이사, 코앨리션포퀸스 이사, 캐리인스티튜트 이사, 스타이비선트고교 동창회장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김수형#스탠더드제너럴#미국 헤지펀드#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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