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던 2003년 봄은 ‘김정일식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남북 교류도 활발하던 때였다. 전년부터 100명 이상의 기부자를 대규모로 평양에 실어 나르던 국내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방북 모니터링 활동도 한동안 중단됐다. 북한 내각(한국의 행정부) 산하 보건성이 중심이 된 방역 당국이 4월 중국 베이징을 통한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자, 일부 단체들은 부랴부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 들어가려 했지만 그마저 이내 막혔다.
한국 단체들을 초청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남북관계의 활황을 타고 끗발을 날리고 있었다. 남측 인사들의 방북은 국가안전보위부 등 최고 권력기관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발이 묶인 한국 단체들에 “보건성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들어와도 14일 동안 격리되기 때문에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실권이 없는 내각, ‘고난의 행군’ 경제난 당시 국가 의료 시스템이 거의 허물어져 껍데기만 남은 보건성이 최고 권력기관들 앞에서 말발을 세우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그해 몇 달 동안, 그리고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 당시에도 보건성은 오랜만에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힘없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위기 상황에서 방역과 치료라는 비싼 혜택은 정확하게 ‘권력과의 거리에 비례하여’ 배분됐다”고 말했다. 김 씨 최고지도자 일가와 특권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 지방에서도 좀 더 권력 자원을 확보한 지역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국경이 통제된 2015년 북-중 국경 도시에 살았던 이모 씨(여·2017년 탈북)는 “당국이 ‘물 끓여 먹어라’ ‘외부인 접촉하지 마라’ ‘중국 음식 먹지 마라’라고 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로 쏘다녔다. 방역이나 치료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제대로 된 장비도 약품도 지원받지 못하고 ‘검병’(檢病·우리의 검역) 활동을 해야 하는 지방의 의료진은 노심초사였다.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환자가 나오면 책임을 질까 두려워서다.
최근 조선중앙T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철저한 방역 태세를 대내외에 홍보하고 있지만 ‘정치적 지리적 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주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부족한 보건 서비스로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kg당 3위안 하던 쌀값은 두 배가 넘는 7위안으로 치솟고 당국이 마스크를 안 쓰면 외출금지를 하는 바람에 가족이 마스크 하나를 돌려쓰고 있다고 전했다. 의심환자 두 명이 나왔다는 소문이 떠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정부의 대북 방역 협력 추진 소식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목적과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과거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남북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활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정부 또한 그럴지라도 그건 남북 관계가 단절된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사회적 약자도 혜택을 받아야 하고 투명한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실무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양보하기 힘들다. 평양이 아닌 지방, 당 간부가 아닌 시장 꽃제비도 ‘검병’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충분하게 주라. 하지만 지원 물자가 제대로 쓰이는지 사후에라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며 ‘하지 말란 말이냐’고 할 것이다.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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