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선원 시절 원목선, 유조선, 철광석 운반선 등 부정기선에 승선했다. 태극기를 단 정기선을 한번 타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부정기선의 매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기선은 입출항 시간과 항로가 정해져 있고, 같은 구간을 반복 운항한다. 컨테이너 선박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인천∼광양∼부산을 거쳐 미국 서부 롱비치를 반복해서 다닌다. 화주에게 예정된 일자와 시간에 화물을 인도해야 하므로 시간을 꼭 맞춰야 한다.
이에 비해 부정기선은 다양한 항로를 다니며 어떤 화물이라도 싣는다. 미국 서부에서 원목을 싣고 일본에서 하역하고, 일본에서 철제를 싣고 유럽으로 간다. 이런 영업방식의 차이는 선원들의 선상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항구 정박 기간이 길다는 것이 부정기선 승선의 가장 큰 매력이다. 원목선은 최장 보름 항구에 정박했다. 하나에 길이가 10m 되는 원목 수천 개를 선박에 빠르게 싣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적에는 통상 일주일 정도 걸린다.
입항하면 선원들의 마음은 소풍 떠나는 아이들처럼 가벼워진다. 맥주라도 한잔하고 백화점에서 가족 선물이라도 사야 한다. 첫날은 조심스럽게 탐색하다 다음 날부턴 이국의 신기한 풍물에 젖어든다. 누가 어디에 다녀왔는데 좋더라 하면 찾아가 본다. 출항 시간이 다가오면 아쉬움을 두고 떠나야 한다.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선교나 식당에서는 육지에서 있었던 일들로 웃음꽃이 터진다.
특히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포틀랜드시를 제2의 고향이라 할 정도로 많이 기항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 그중 컬럼비아강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지역은 원목이 많이 난다. 그리고 곡창지대다. 원목과 곡물을 수출하기 위해 컬럼비아강을 따라 항구가 형성됐다. 부두가 준비되지 않으면 강에 닻을 놓고 며칠을 기다린다. 우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구명정을 내려 노를 저어서 공원에 갔다. 맥주와 함께 고기를 구워먹기도 했다.
포트앤젤레스 부두에서는 보잉사에서 은퇴한 60대 어른을 만나 그의 집에도 초대받아 놀러 갔다. 그를 통해 미국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항해 중 읽으라면서 다양한 책을 줬다. 그가 선물한 니미츠(옛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자서전과 1943년에 발간된 타임지는 내가 아끼는 소장품이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양 부부는 어떻게 다투는지도 알게 됐다. 그 부부는 공원에 나들이를 갔다가 음식 준비를 빠뜨린 것을 알고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부정기선을 탄 덕분에 필자는 많은 외국 문물을 경험했다. 하지만 정기선이었으면 좋았을 일도 있었다. 1984년 오락 담당이었던 나는 선원용으로 비디오테이프를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두 개 구입했다. 그런데 배에 가져와서 틀어보니 안 나왔다. 비디오와 플레이어의 방식이 달랐던 것. 환불을 해야 하는데 배는 당일 출항 예정이었다. 그 배가 같은 항구를 다니는 정기선이었다면 나중에라도 바꿀 수가 있었을 텐데. 부정기선의 선원들은 가수 심수봉의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서 ‘떠나가는 남자’에 해당한다. 항구로 돌아올 기약이 없는, 그래서 때로는 절박하게 때로는 자유롭게 항구의 낭만에 집착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