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직장인들이 들으면 기겁할 얘기가 최근 국책은행에서 논의되고 있다. 19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3개 국책은행의 노사,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 관계자가 모여 ‘명퇴 활성화’ 간담회를 열었다.
명예퇴직을 강하게 요구하는 건 오히려 노조 쪽이다. 이날 회의에서 노조 측은 대부분 직원들이 명퇴금이 너무 적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더라도 회사에 눌러 앉는 쪽을 택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인사 적체가 심화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명퇴 조건을 시중은행에 근접할 정도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책은행의 명퇴금은 임금피크 5년 동안 받는 급여 절반의 45% 정도다. 시중은행은 30개월 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는다. 경우에 따라 5억 원 가까이 차이가 나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했다.
국책은행에서 임피제 적용을 받는 인력은 갈수록 늘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530명에서 내년에 1020명으로 늘어난다. 산업은행도 같은 기간 274명에서 365명으로 증가한다. 임피제 적용을 받는 직원들은 마땅한 보직 없이 회사를 나와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업무만 보고 퇴근하는 ‘잉여’인력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느니 명퇴금을 많이 얹어줘서라도 내보내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효율성을 높이자는 게 노조 측 논리다.
하지만 정부는 명퇴제도 도입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을 제외하고 국책은행만 명퇴제를 도입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국책은행에 수억 원의 퇴직금을 얹어주는 제도를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국책은행은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은행과 달리 치열한 영업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부실이 나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곳간을 채워준다. 국책은행에 대한 가장 잦은 비판 중 하나가 ‘방만경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기관으로서의 고용 안정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의 혜택을 누려 놓고 퇴직하면서까지 민간 은행과 똑같은 혜택을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의 주장이 힘을 받으려면 명퇴제 도입 전에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 성과연봉제, 직무급제를 도입해 일선 직원은 물론 임피제 인력도 일한 만큼 보상받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일한 만큼의 성과를 명퇴금으로 준다면 이 역시 퇴직금 인상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노조가 성과연봉제나 직무급제 등을 거부하면서 명퇴금 인상만 요구한다면 친노동성향의 정부라도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노조의 오래된 ‘잠언’은 국책은행 명퇴제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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