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칼끝을 주웠는데 부러진 연유는 알지 못하겠다./시퍼런 뱀 꼬리 같고 뾰족한 푸른 산봉우리 같기도 하다./고래를 베다 부러졌나, 교룡을 찌르다 부러졌나./부러진 채 진흙 속에 버려져 줍는 이 하나 없다./나 역시 성질이 유별나서 강직한 건 좋아해도 유순한 건 질색./강해서 부러진 칼을 얕보지 말지니, 굽은 채 온전한 갈고리보다는 낫다네.
젊은 시절 백거이는 간관(諫官)으로서의 기개가 대단했다. 자주 황제에게 입바른 상소를 올렸고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시를 곧잘 지었다. 그런 기개를 보여주듯 길바닥에 떨어진 시퍼렇게 날 선 칼끝을 주워들고 발휘한 상상력이 범상치 않다. 검(劍)은 애당초 고래나 용 같은 거악(巨惡)에 맞섰을 것이다. 서릿발 같은 고절(孤節)과 강직으로 저들의 횡포에 항거했으리라. 무모한 도발처럼 보일지언정 고달프고 외로운 선택일지언정 꼿꼿이 버티고 버티었을 것이다. 부러진 칼에 대한 시인의 연민과 애착은 그래서 더 고귀하다. 반면 갈고리는 그저 유연하고 미끈둥하다. 애써 버티거나 꺾이는 대신 기꺼이 휘거나 손에 감김으로써 온전하게 생명을 이어간다. 타협하고 양보한 만큼 쏠쏠한 대가를 누린다. 검과 갈고리, 강직과 유연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한시도 고민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저항과 타협,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를 무시로 오가며 갈등을 반복한다. 삶은 언제나 이렇듯 아슬아슬하고 또 비장하다.
이 시를 받아 본 친구 원진(元유)의 도량도 두둑했다. “그대가 부러진 칼끝을 주웠다는 소식에 내 웅대한 포부가 되살아났네. 부러진 칼끝이라지만 잘린 저들의 머리와 어디 비교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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