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 씨(43)는 정치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근한다. 사무실에선 틈이 나면 포털에 걸린 정치 뉴스를 읽는다. 통쾌한 기사나 화나는 기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붙여 올린다. 때때로 온라인 국민청원에 동참한다. 잠들기 전엔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정치 이슈를 좇고 지지 정당 혹은 정치인과 관련된 내용엔 일일이 응원 댓글을 단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실질적으로 하는 정치 행동은 딱히 없다. 그는 “반대 정당(정치인) 비판 글을 접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웬만한 취미 생활보다 정치 뉴스 보기가 더 재밌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곳곳에서 중계되다시피 하는 정치 뉴스를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듯 소비하고 논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정치 하비스트(political hobbyist)’로 일컫는다. 미국 터프츠대 정치학과 에이탄 허시 교수가 저서 ‘정치는 파워를 위한 것’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감정적으로 만족하고 (어떤 국면이 이어질지) 궁금증을 채우려고 정치 뉴스를 소비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허시 교수는 미국에서 1950, 60년대에 출현한 ‘아마추어 민주당원(Amateur Democrats)’에 이들을 빗댔다. 대졸 전문직 남성 위주로 미 워싱턴 정가 뉴스를 좇으며 정치 토론에 열중했지만, 정작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정책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대개의 민주당원들이 끈기를 갖고 꾸준하게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의 환경을 바꿔 나가고 기본권 옹호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었다.
문제는 이런 정치 하비스트의 특질이 ‘캔슬 컬처(cancel culture)’와 맞물렸을 때다. 캔슬 컬처는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면 팔로를 취소(cancel)한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를 타면 집단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호주 매쿼리사전 등에도 등재된 영미권 신조어다. ‘당신을 내 세상에서 없앤다’는 캔슬 행위로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때로는 도덕적 정치적 과시에 빠진다. 소셜미디어에선 자신이 팔로하는 사람, 즉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글에 둘러싸여 확증 편향에 갇히기 쉽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 가능한 일이다.
우리 현실을 생각해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한 사람의 신상을 털어 인신공격에 나서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반하는 글을 쓴 필자를 개인이 잇달아 고발한다. 같은 진영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문자 폭탄 보내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보다는 팬덤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가 민주주의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판단보다는 감정을 내세우고 구체적인 정책 실행보다는 추상적인 구호와 이념에 빠져 뉴스를 관전하는 건,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바꾸기 위해 힘을 실어주는(empowering) 정치 본연의 목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행태가 문제 되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누군가에게 돌 던지는 것은 쉽다. 하지만 캔슬 컬처는 깨어 있고 의식 있는 행위도 아니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치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우리에게 ‘진짜 정치’란 무엇인가. 총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