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오랜만에 학교 앞 삼겹살집에 갔다. 노릇하게 삼겹살이 구워지자 다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먹기 시작한다. 이제 사진은 오감에 더해져 또 하나의 감각이 됐다. 맛있게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난 후 다시 단체사진을 찍는다. 오늘의 멋진 시간이 사진으로 남겨진다. 하루의 일기처럼. 이 사진이 어쩌면 그냥 메모리에 남겨져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함께한 시간과 장소는 정확히 이미지에 남아 있다.
수업을 마칠 때 숙제를 칠판에 적으면 학생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숙제를 찍는다. 그럴 때마다 농담으로 “나를 빼고 찍어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가장 친숙한 카메라를 활용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노트를 통해 공부를 했던 내 세대보다 또 다른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내 청춘을 상징할 수 있는 물건 중 하나는 필름 카메라 ‘FM2’다. 손 안에 쏙 들어가고 적당히 무겁고 내가 생각하는 순간을 사각의 프레임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어딜 가든지 가방에 이 카메라를 넣고 다녔다. 찌그러지고 칠이 벗겨졌지만, 이미지는 정확히 내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FM2 카메라는 이제 은퇴해서 먼지가 쌓인 채 책장에 놓여 있다.
요즘엔 예전 필름 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시모스’라고 불리는 상보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와 전하결합소자(CCD)가 대신하고 있다. 둘 다 일종의 이미지 센서다. 디지털 카메라는 빛의 세기와 색채를 적색-녹색-청색 빛에 대응하는 이미지 센서가 감지하며, 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시킴으로써 이미지를 얻어낸다. 이 원리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빛의 생성과 변환에 대한 발견적 견해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광전 효과 이론에 담겨 있다. 이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빛을 단순히 파동이 아니라 양자라는 개념이 담긴 광자(photon)로 다룬다. 우리는 이 광자를 전자로 변환시킴으로써 영상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1억 이상 화소의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가 나오고 있다. 인간의 눈에서 망막에 해당되는 이미지 센서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으로 더 진화해 나갈 것이다. 최근 칠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루빈 천문대에는 세계 최대 해상도인 32억 화소 카메라가 설치됐는데, 2020년부터 관측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루빈 천문대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최초로 제시한 여성 과학자 베라 루빈의 이름을 딴 천문대다. 세계 최대 해상도를 가진 카메라로 우주의 96%를 차지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밝혀낼지도 모른다.
이미지 센서의 발전으로 세상은 더 명확해지고 밝아지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물질까지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매순간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또 이 이미지들은 역사책처럼 축적되고 있다. 이 거대 이미지가 인공지능을 통해 가공되어 만들어낼 세상은 또 어떤 세상일까? 멋진 신세계일까? 과연 어떤 색채를 띤 세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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