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북극성이 있는가[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2일 03시 00분


하버드에서 연 윤리적 사유 강의… 엘리트 대학생들 고민-관심 쏟아져
잇단 화이트칼라 범죄-모럴 해저드… 옳고 그름은 없고 경쟁 승리에만 골몰
우리,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요즘 페이스북에선 책을 추천하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7days7covers’ 챌린지. 7일 동안 매일 책 한 권을 추천하고 한 사람을 특정한다. 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호출해 참여토록 하는 캠페인이다. 나도 옛 클라이언트의 초대를 받아 참여했다. 책은 설명이나 추천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저 표지만 올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떤 이는 왜 그 책을 추천하는지, 본인에게 어떤 각별한 인연이 있는지 등을 쓰기도 하는데 고지식한 나는 하라는 대로 그저 표지만 올렸다. 나의 첫 책은 ‘예수 하버드에 오다’. 몇몇 책을 놓고 고민하다 이 책으로 정했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저명한 신학자 하비 콕스가 썼고 2004년 출간되었다. 책에도 세상에 나오게 된 저마다의 이유와 사연이 있는 법인데 이 책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시초는 하버드대의 고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만히 보니 화이트칼라 범죄에 하버드 졸업생들이 연루되곤 하더라는 거다. 대학 측은 자신들이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리고 가르치지 않은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지식을 가르쳤을 뿐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고 자성했다. 학생들을 전문가가 되도록 이끌었지만 가치관에는 별 관심을 쏟지 않았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대학이 이런 질문을 던진 것도 인상적이지만 그들이 찾은 해법도 그랬다. 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학생들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도록 ‘윤리적 사유’를 가르치기로 한다.

콕스가 이 수업을 맡았다. 그는 2000년 전 유대 땅에 살았던 랍비 예수를 불러온다. 학생들에게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판단을 요하는 질문을 던지고 과연 랍비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도록 한 거다. 답을 알려주는 대신 자기 삶과 생각을 돌아보게 해 스스로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수업을 누가 들을까 우려했지만 대형 강의실이 미어터질 만큼 인기 수업이 됐고 학생들은 마치 록 콘서트처럼 뜨겁게 토론했다. 하버드의 청춘들에게도 학점 잘 따는 것 이상으로 인생의 고민들이 있었던 거다. 수업을 듣고 감사의 편지를 보낸 학생도 많았는데 화학을 전공하는 어느 여학생의 편지는 이랬다. 자신은 과학도로서 실험을 주로 하며 살았는데 난생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며 고민해 보게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엊그제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치매 노인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신청했다가 담당 공무원에게 거절당했다는. 후견인은 1년에 한 사람만 할당을 채우면 되는데 올해 목표는 달성했으니 내년에 신청하라고 하더란다. 이 공무원은 치매 노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혹은 어째서 세금이 자신을 먹여 살리는지 생각이란 걸 해봤을까. 그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꿰찼으니 그걸로 됐다고 여긴 게 아닐까. 옳고 그름은 고사하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에 대해서도 아예 생각이 없으니 어처구니없고 분통이 터진다.

엘리트들은 더하다.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금융 상품으로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주했다는 뉴스, 가짜 정보로 주가를 띄워 내부자들은 이득을 보고 개미들에겐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는 뉴스, 고위 공직자들이 범법 행위로 줄줄이 기소됐다는 뉴스가 날마다 쏟아진다. 하나같이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와 출세한 엘리트들의 소행이다. 한때는 부모의 자랑이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우리 사회가 길러낸 엘리트들은 어째서 이렇게 비루한 걸까.

내가 독서 추천 캠페인에 이 책을 첫 책으로 고른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승자가 되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 하지만 해도 되는지, 삼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거나 얕다.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하게 한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고비도 찾아온다. 어느 것이 더 유리한가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인생엔 그런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론 평판과 인격, 인생이 걸린 문제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무얼 보고 방향을 정하나? 길을 잃었을 때 쳐다보고 방향을 정할 북극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가끔씩이라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옳게 가고 있는지를! 그래야 최소한 실패한 인생은 살지 않을 테니.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7days7covers#모럴 해저드#예수 하버드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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