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옥죄는 상생 규제[현장에서/허동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03시 00분


지난해 개점한 블루보틀 1호점에 손님들이 줄을 선 모습. 동아일보DB
지난해 개점한 블루보틀 1호점에 손님들이 줄을 선 모습. 동아일보DB
허동준 산업1부 기자
허동준 산업1부 기자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소상공인을 규제하다니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를 앞둔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지역상권상생발전법)’에 대한 소상공인과 경영계의 반응이다. 이 법은 지역자치단체장이 지정한 활성화구역에 가맹점사업, 대규모·준대규모 점포가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자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골목상권이 활성화돼 임대료가 뛰면 터줏대감격인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가는 현상이다. 지자체장이 “기존 상인을 보호하겠다”고 선택하면 가맹점사업이나 대규모 시설이 못 들어오게 막을 수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8일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통해 2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는 대기업과 영세상인의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이 맞지 않는다. 영세상인을 도우려다 오히려 소상공인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규제대상인 가맹사업점주 대부분이 소상공인이다. 대규모 점포에 입점한 업체들도 대체로 개인사업자들이다. 롯데월드몰, 스타필드, 코엑스에 입점한 1295개 매장 중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전체 68%를 차지한다.

경영계는 또 국제규범에 위반돼 글로벌 흐름을 역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은 국가 간 합의해 따로 명시하지 않으면 서비스 공급자 수를 제한하지 못하게 돼 있다. 지난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 정부가 신규 점포 개설에 대한 지리적 제약 강요 등으로 미국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 문제는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기존 5년에서 최장 10년으로 늘렸다. 더구나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를 막기 위해서 이미 상생협력법과 유통산업발전법이 있다. 여기에다 지역상권상생발전법을 만드는 것은 중복규제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은 악’이라는 편협한 사고가 과잉 규제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블루보틀’이 입점하면서 활력을 되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카페거리와,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입점하면서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충남 당진전통시장 등의 상생사례는 현 정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법만 아니다. 대기업 이사회에 오래 이름을 올린 사외이사는 결탁됐을 것이라는 시각에서 사외이사 임기에 제한을 둔 상법 시행령개정안 등도 과잉 규제다. 얼마 전 만난 한 대학교수는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정부 여당은 불필요한 ‘규제 덧칠’만 잔뜩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각계의 우려가 정부 여당에 전달이 안 되는 것일까, 전달된 목소리가 의도적으로 무시되는 것일까.
 
허동준 산업1부 기자 hungry@donga.com
#지역상권상생발전법#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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