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본능적으로 직감… 솔직하게 말해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03시 00분


<97> 부모가 불치병에 걸렸다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한 엄마가 아이 아빠가 간암 말기라고 했다. 아빠를 무척 좋아하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아직 사실을 모르고 있단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면 아이가 충격을 받을 텐데 어떻게 이야기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누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다. 이럴 때는 언제나 상황과 맞닥뜨려 진솔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면 어른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에 감추려 들기도 한다. 숨기거나 그런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도 어른들의 반응이나 행동에서 아이도 상황이 잘못돼 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보호라는 미명 아래 아이에게 그런 사실을 숨기고 아닌 척하면 아이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혹시 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대상이 부모나 형제 등 아이에게 소중한 존재라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주변에서 쉬쉬하는 바람에 아이는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 충격 때문에 슬픔이 제대로 정화되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의 마음에 분노와 그 과정에 자신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 자리 잡게 되면서 힘들어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아이와 심적으로 가까워져야 한다. 특히 부모는 아이와 심적으로 아주 가깝게, 그리고 솔직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정직함과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늘 부모의 행동과 표정을 살피고 있다. 부모 중 한 사람에게 심각한 질환이 있다고 진단받았을 때에는 초기에 아이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

어떻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을까. 우선 아이 옆에 앉는다. 마주 보고 앉는 것보다 옆에 앉는 것이 좋다. 아이가 부모의 신체 접촉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손을 잡거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네게 할 말이 있어. 좋지 않은 소식이란다.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 잘 버텨 나가야만 하는 어려움이 생겼단다”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이때 아이의 충격을 줄여 주기 위해서 유머라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할 필요는 없다.

아이에게 이러이러한 식으로 진행되면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누가 아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도 이야기해 준다. “너도 아빠가 좀 오랫동안 아프셨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 근데 병이 지금 더 나빠졌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빠가 이 병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할 거라고 말씀하신단다” 하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나중에 다시 기회를 만들어서 죽음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이 좋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 아이는 나머지 한쪽 부모는 자신의 옆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 죽지는 않는지 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아이가 안심하고 안정될 수 있게 확신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아이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본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감, 공포감을 느낀다. 순간적으로 버림받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당히 자기중심적으로 변할 수 있다. 불안감이 상승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부모는 이런 상황을 한 번에 다 이야기하지 말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해주어야 한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이야기를 다음 기회로 미룬다. 아이가 아주 어린 경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책이나 영화 같은 것을 보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이야기해 준다.

아이가 너무 많이 슬퍼하고 심리적으로 잘 이겨내지 못할 때에는 상담 치료나 미술 치료, 놀이 치료 등이 도움이 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픔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이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했던 무의식적인 갈등 요소들을 찾아내어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동 상담 치료#아동 미술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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