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건축과 공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9일 03시 00분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창문(Window)의 영어 단어는 바람구멍을 뜻하는 wind-eye의 고어 wind-ow에서 유래했다. 원래 창문은 밖을 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에 이르기까지 두꺼운 벽에 뚫어 놓은 작은 창문은 채광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여전히 환기를 위한 구멍이었다. 이후 고딕 양식에 이르러서야 건축기술의 발달로 두꺼운 벽 대신에 기둥으로 하중을 지탱할 수 있게 되면서 벽은 얇아지고 창문은 커졌다. Window는 드디어 공기뿐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찬란한 빛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됐다.

신선한 공기를 확보하는 것은 20세기 초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근대 건축운동에서 중요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였다. 깨끗한 공기는 건축가들이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이긴 했지만, 20세기 초만큼이나 절실한 적은 없었다. 산업화의 눈부신 성취 이면에는 공장의 매연과 빈민가의 불결한 환경이 따라다녔다. 그 속에서 공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근대 도시의 시민 대다수가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급속한 산업화는 도시의 무질서를 초래했고, 유럽의 산업도시들은 슬럼가로 넘쳐났다. 그 안에는 여지없이 전염병과 호흡기 질환이 만연했다.

이러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고심했던 당대의 건축가들 가운데 ‘르코르뷔지에’도 있었다. 20세기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그는 고심의 결과로 현대적 개념의 아파트를 탄생시켰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대적 아파트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1600명이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이다. 르코르뷔지에는 당시 혁신적이었던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적용해 공간의 쾌적성을 높였다. 철근콘크리트 기둥만으로 건물을 지탱할 수 있게 되면서 신선한 공기를 위해 벽도 없앨 수 있었다. 1층에는 기둥만 있고 2층부터 주거공간이 시작되는 ‘필로티’ 방식의 건축물은 그가 유행시킨 것이다. 유럽의 전통 중정형(中庭形) 주거 형태는 환기가 잘 안 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필로티 구조에서는 빛과 공기가 건물 아래로 흐르고 앞뜰과 뒤뜰을 하나로 연결시켜 항상 공기의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르코르뷔지에는 1929년 한 연설에서 모든 대륙의 날씨 조건과 상관없이 항상 쾌적한 공기 상태에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건물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그 집은 정확히 말해 ‘숨 쉬는 집’”이라고 밝히면서 “인간이란 ‘순수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위대한 건축가들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가 흐른 지금, 과연 우리가 편하게 숨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 유럽의 도시 근로자들이 겪었던 공해와 전염병의 고통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미세먼지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보다 더 비참한 것이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미세먼지#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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