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한 국가수사본부장, 대통령이 임명… 경찰 중립 보장될까[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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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권력 분산’ 개혁 법안 뜯어보니

민갑룡 경찰청장(왼쪽)이 1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무궁화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에 참석해 검경 수사권 조정법 통과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두발언을 마친 뒤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현재 경찰의 권한을 견제할 개혁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 이전에 처리가 불투명하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조건희 사회부 기자
조건희 사회부 기자
우리나라 경찰을 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훌륭한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2018년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살인 사건의 62.4%는 하루 안에 범인을 잡는다. 과학수사 기법을 배우러 해외에서도 찾아온다. 경찰이 일 못한다고 나무라는 이는 드물다.

한데 경찰이 권력 앞에 공정한지 물으면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까지 따질 필요도 없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를 위해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도 2018년 지방선거 개입 혐의로 검찰이 기소했다.

국민들은 “경찰이 그랬을 리 없다”와 “경찰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 가운데 어디에 더 공감할까. 후자 역시 한국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존재한다. 경찰 개혁 논의는 이처럼 ‘바람 따라 흔들리는 예리한 칼날은 무딘 칼날보다 더 위험하다’는 불안 섞인 시각에서 비롯됐다.

○ 국가수사본부장, 임명부터 독립성 보장해야

올 1월 검경 수사권 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정부와 국회는 모두 경찰 개혁 의지를 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7일 여당 지도부와 만나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의 권한이 커졌기 때문에 경찰에 대한 개혁 법안도 나와야 한다”라고 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전혜숙 위원장도 지난달 17일 “경찰 개혁 법안을 20대 국회 임기 내에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여당이 내세우는 경찰 개혁 법안의 기둥은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신설 △정보경찰 활동 범위 축소 △자치경찰제 확대 시행 등 3가지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 9건 가운데 지난해 3월 행안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경찰법 전부개정안이 사실상 정부안이다.

먼저 국수본을 새로 만드는 건 경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시행되면 기존 ‘경찰청장→지방경찰청장→경찰서장’ 지휘 라인은 수사에서 손을 뗀다.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방경찰청 2부장을 통해 일선 경찰서 수사·형사과장에게 수사의 대상과 범위, 시기, 송치 여부 등을 지휘한다. 국가수사본부장은 수사 경찰에 대한 실질적 인사권도 가진다. 특정 수사에 인력을 집중 투입할 수도, 맘에 들지 않는 경찰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국가수사본부장을 어떻게 뽑을 건지’ 묻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경찰 개혁 법안을 보면,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청장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야 합의나 인사 청문회도 거치지 않는다. ‘3년 단임, 검사나 법대 교수 등 외부 인사도 맡을 수 있는 개방직’이란 조건이 있지만,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장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국수본이 신설되면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막을 수 있을까. 일선 형사들은 여기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국가수사본부장 한 명만 회유하면 권력은 수사에 더 쉽게 입김을 미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는 여야를 포함한 외부 인사들로 구성한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추천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국가수사본부장 계급인) 치안정감 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 말고 뭐가 달라지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평했다.

○ 정보경찰 흔드는 손을 먼저 처단해야


정보경찰 개혁은 일선 경찰 정보관(IO)이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명확히 규정하는 게 핵심이다. 경찰은 광복 이후인 1948년 11월 치안국에 설치된 사찰과(査察課)를 정보경찰의 시초로 본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경찰청은 국내 정치 사찰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뒤 같은 해 12월 실제로 경위급 이상 IO 대다수를 면직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듬해 5·16쿠데타 이후 제자리로 돌아왔다. 2018년 1월 검찰의 영포빌딩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초기 정보경찰 문건들이 발견됐다. 정보경찰이 여전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왔다는 게 드러났다.

경찰청은 지난해 1월 자체 개혁 방안으로 ‘정보경찰 활동 규칙’을 만들었다. IO의 활동 범위를 정하고 이를 어기면 경찰청 준법지원팀이 조사를 거쳐 관련자들을 교육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미래통합당 김성태 의원실의 질의에 경찰청이 답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규칙을 만든 이래 준법지원팀의 조사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전국 2985명(지난해 12월 기준)인 IO들이 새 규칙을 잘 준수한 결과라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규칙 자체가 지닌 허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정보계장이 부하 IO에게 지역구 야당 의원의 정보 수집을 지시한 사건(동아일보 1월 29일자 A12면)도 준법지원팀은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규칙에 따르면 IO 본인이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신고해야만 준법지원팀이 나서도록 돼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관련 법안엔 경찰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치안 정보’에서 ‘공공 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 관련 정보’로 구체화하고 정치 관여 활동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공 안녕’이나 ‘위험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 법안엔 두 가지 중대한 허점이 있다.

①부당한 정보 수집을 은근히 지시한 사람에 대한 엄벌 조항과 ②내부 고발자 보호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일선 IO들은 이른바 ‘얘기 되는 페이퍼(보고서)’를 독촉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느낀다. IO만 처벌해선 이들을 이용하려는 ‘검은손’을 자를 수 없다.

○ 자치·국가경찰, 업무 구분 명확해야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이원화해 거대 경찰 조직을 광역자치단체로 분권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기존 지방경찰청 및 경찰서와 별개로 자치경찰본부와 자치경찰대를 만들고, 광역자치단체장 소속 합의제 행정기관인 ‘시도 경찰위원회’가 이들의 인사와 예산을 관할한다. 자치경찰대는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를 관할하며 112신고 출동과 순찰, 교통 단속, 지역행사 경비 등 업무를 맡는다. 제주에선 2006년부터 제주도특별법에 따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법안을 들여다보면 자치경찰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폭행 가해자가 한 명이면 자치경찰이 수사하지만 여러 명이면 국가경찰이 수사한다. 자치경찰이 폭행 사건을 수사하다가 폐쇄회로(CC)TV로 공범을 확인하면 국가경찰에 사건을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관할 다툼으로 초동 수사가 지연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제주에선 자치경찰이 무면허 운전자를 적발한 뒤 불법체류자인지 확인하려 국가경찰에 사건을 넘기는 동안 운전자가 도망쳤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치경찰제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자치경찰이 토호 세력과 결탁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시도 경찰위원회 위원 5명 가운데 1명은 광역자치단체장이 지명하고 2명은 시도의회가 추천한다. 게다가 시도 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본부장 후보를 2명 추천하면 광역자치단체장이 선택해 임명한다. 사실상 지방행정 권력이 경찰력을 흡수하는 구조도 될 수 있다. “경찰의 ‘사병(私兵)’화가 우려된다”(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거나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가장 기쁠 것”(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이란 지적이 나온다.

○ 경찰, 개혁 의지 입증해야

경찰 개혁 법안은 왜 이런 허점을 보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개혁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부산물’로 급조돼 생긴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직이 분화돼 중간 관리 인력만 늘어나고 현장 일손이 부족해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경찰 출신인 박상융 변호사는 “지금 경찰은 지방경찰청이 비대하고 업무에서 보고서 작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현장에서 뛰는 인력을 늘리는 삼각형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 감시와 견제를 위해 경찰 수사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경찰 외부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18년 6월 공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는 수사심의위원회를 국수본 산하에 두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셀프 감시’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별개의 조직인 ‘경찰전담감시기구(IOPC)’가 경찰을 감시하는 영국 웨일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경찰 개혁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 이전에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4·15총선 때문에 임기 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을 경찰청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법과 관련해 경찰이 참석하거나 주도한 토론회와 세미나는 61건이었다. 반면 정보경찰 개혁 관련은 7건에 불과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법 통과 직후 “2020년을 ‘책임 수사의 원년’으로 삼아 공정하고 중립적인 시스템을 갖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행동과 말이 다를 때 국민들은 행동에서 진심을 찾게 된다. 

조건희 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국가수사본부장#경찰 중립#경찰 권력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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