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인력 철수해도 홀로 도는 개성 정배수장[광화문에서/황인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일 03시 00분


황인찬 정치부 차장
황인찬 정치부 차장
급박한 하루였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잠정 중단을 통보한 것은 오전 9시 반경. 그날 오후 7시 우리 인력들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것을 감안하면 전원 철수까지 10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북한의 일방 통보에 직원들은 급히 짐을 싸고, 사무실 집기 등에 잠금장치를 하느라 분주했다고 한다.

이렇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1월 30일 개성사무소에서 한국이 철수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개성이 마냥 조용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여전히 우리 시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가 200억 원을 들여 2007년 세운 정배수장을 돌려 하루 1만5000t의 식수를 개성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17km 떨어진 월고 저수지에서 물을 가져와 정수 과정을 거쳐 북한 주민에게 보내는 것이다. 정수에 필요한 약품 등 필요물품은 우리가 갖고 올라간 것들을 북이 쓰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배수장을 돌리는 전기도 우리 것이다. 문산변전소에서 송전선로를 따라 개성 평화변전소로 아직도 매일 송전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개성에서 우리 정수장이 돌아가고, 우리 전기가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개성에서 철수하면서 관련 시설 유지와 관리를 북한에 ‘위탁’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철수 당일 북한과 시설 관리 방안을 놓고 협의했지만, 전원 철수를 강조한 북한의 요구에 급한 대로 우리 자산을 맡기고 내려왔다. 한 정부 당국자는 “시설을 전면 폐쇄할 경우 향후 사무소 재개 시 개·보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것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앞서 2018년 9월 사무소를 개소할 때 연관 시설물의 개·보수에 100억 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 것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정배수장은 하루 6만 t의 용수를 생산해 4만5000t은 개성공단에, 나머지는 개성시에 공급됐다. 공단 가동에 필요한 수량을 쓰고 여유분을 북한에 주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젠 정배수장 가동 혜택을 오로지 북한이 보는 것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북한은 개성공단 우리 기업의 자산을 동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무소 폐쇄 이후 이런 개성 상황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관련 브리핑이나 자료에서 정배수장이나 전기 공급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 해 정배수장을 가동하는 데 약 10억 원, 매달 8000만 원가량이 소요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통일부는 “정확한 금액을 밝히기 어렵다”고만 한다. 하루 대북 송전량도 밝히지 않고 있다.

감염병으로 인한 잠정 중단인 만큼 “급한 대로 북한에 시설 관리를 일시적으로 맡겨뒀다”는 정부 설명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개성의 현재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려는 노력을 병행했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우리 자산을 사용하면서 빚어질 수 있는 대북 제재 위반 논란도 피할 수 있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코로나19#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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