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버림받고 짓밟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고려인’이라 통용되는 우리 조상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시집 ‘강제이주열차’를 펴낸 이동순 시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기꺼이 빌려준다.
1937년 8월 말에 내려진 스탈린의 명령 하나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 그들은 9월부터 12월까지 짐승을 운반하는 화물차에 실려 몇만, 몇십만 km를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짐승/그러니까 가축 수송 열차 태웠지.’ 20만 명 중 2만 명이 그 와중에 죽었다. 스탈린의 눈에는 그들이 얼마든지 버려도 되는 잉여적인 존재였다. 일본에 쫓겨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나중에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짐승처럼 실려 갔던 사람들. 시인은 그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줌으로써 그들이 한스러운 마음을 토해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50편이 넘는 시들이 그들의 울음과 눈물로 철철 넘치는 이유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 중 어조와 결이 다른 목소리가 하나 있다. ‘내 친구 막심’이라는 시가 그렇다. 다른 시들이 상처와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이 시는 따뜻한 환대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트럭에 실려 허허벌판에 버려졌을 때는 컴컴한 새벽녘이었다. 그들이 몸을 웅크리고 찬 서리를 맞고 있을 때, 나귀 방울 소리가 들렸다. 어떤 카자흐 사내가 그들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원동에서 온 고려인에겐/말도 붙이지 말고/음식도 베풀지 말고/최소한의 접촉도 하지 말라던/당국의 지시 묵살하고’ ‘밤새도록 가족들과 빵 구워 담은 자루/식지 않도록 이불로 덮어/나귀 등에 싣고’ 그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지독한 무관심과 적대를 강요하는 시대에도 인간의 동정심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이 ‘낯설고 적막한 카자흐에/수십 년 정붙이고 산 건’ 그런 사람들 덕이었다. 이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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