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보다는 위로를[김창기의 음악상담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7일 03시 00분


<93>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예쁜 어쿠스틱 기타로 전주를 마친 조지 해리슨이 위로의 멜로디를 속삭입니다. “아이야. 길고 추운 겨울이었지? 이제야 천천히 얼음이 녹는구나. 햇살이 비추기 시작해. 곧 괜찮아질 거야!” 비틀스 시절 조지 해리슨의 최고의 곡이죠.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를 공포로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 사태도 겨울처럼 지나갈 것이고 우린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을 것입니다.

공포, 불안, 분노는 같은 집안의 감정들입니다. 뇌의 한가운데 위치한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편도’라는 기관이 조절하는 생존을 위한 가장 본능적인 감정들이죠. 편도는 신체적인 안전이나 사회적 가치를 위협받을 때 활성화됩니다. 처음 나타나는 감정은 불안입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감지하고 긴장하는 것이죠. 우리를 위협하는 가해자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할 때 불안은 공포가 되고, 이기거나 비길 수 있다면 분노가 됩니다.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공포를 조절해야 합니다. 공포는 시야를 좁혀서 성급한 판단과 과잉반응을 하게 만드니까요. 위기일수록 객관성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안전을 최대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감염 가능성과의 접촉,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 ‘사회적 거리 유지’죠.

다음은 불안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불안은 당장 해소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하죠. 불안이 지속되면 뇌에 피로감, 무기력, 짜증과 부정적 사고가 쌓여 우울 증상들을 겪게 됩니다. ‘코로나 피로 증후군’이죠. 이를 극복하려면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부정적 자극을 줄여야 합니다. 저도 환자가 줄다 보니 뉴스와 사설들을 볼 시간이 늘고, 볼수록 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되더군요. 꼭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뉴스 보는 횟수와 시간을 차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희석시키기 위해 즐거운 실내 활동을 찾아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이왕이면 잘 써야죠. 좋은 방법은 멀어졌던 가족, 친구와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입니다. 먼저 연락해 대화를 재개해야 하죠. 같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연대감과 위로를 얻고 이를 전파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분놉니다. 이건 쉽지 않죠. 분명히 당하기는 당했는데, 책임을 지울 곳이 불확실합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당분간 참아야 하죠. 요즘 논설들을 보면 의사보다 의학에 더 해박한 분들이 참 많아 다행이지만, 너무 단언을 하셔서 정치적 의도가 의심됩니다. 과학과 의학은 늘 의심하기에 단언하기를 꺼립니다. 정치와 신념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기에 정치와 신념이 코로나 사태에 숟가락을 얹게 하면 안 됩니다. 진상이 밝혀져야 정당한 분노가 가능한데, 단체적 분노는 개인적 분노보다 수명이 짧죠. 잊지 말고 나중에 혼내줄 때를 기다리는 동안, 우선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잘 살게 되면 분노도 조금씩 녹아내리더군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 피로 증후군#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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